주인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먹이는 등 동물보호 활동을 벌이는 ‘캣맘’과 배설물, 울음소리 등 고양이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이 갈등을 겪고 있다. 부산시는 중성화 수술을 통해 길고양이 개체 수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배설물 청소 등 길고양이 보호책임에 대한 홍보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5일 오후 4시께 방문한 부산 동래구 안락동의 한 도로. 사람이 오가는 길가 한 켠에서는 엎드려 있는 고양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고양이들은 인근에 주차된 차량 밑에 들어가 숨어 있거나 높지 않은 담장을 이리저리 넘어 다니고 있었다.
안락동에 위치한 사찰인 전등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고양이 배설물이 굳은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고 아직 치워지지 않은 배설물도 여럿 발견됐다. 도로 한켠에는 누군가가 비닐에 싸놓은 고양이 사료 더미도 놓여있었다.
지난달 20일 전등사 신도를 포함한 안락동 주민 96명은 동래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제출한 진정서에서 안락동 인근에 있는 100여 마리의 고양이 울음소리와 배설물 등으로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에는 사찰 관계자들이 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을 저지하자 캣맘들이 집단으로 사찰을 항의방문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전등사 도문 주지스님은 “고양이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통에 수행에 집중할 수가 없고, 법당 안에까지 배설물을 남기고 가는 상황”이라면서 “냄새나 소음 등 피해는 왜 우리가 모두 책임져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동래구청 측도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것을 법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는 사항이라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동래구청은 해당 구역에 중성화 작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동래구청 일자리경제과 관계자는 “캣맘들이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동물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면서 “지난달 캣맘들과 간담회를 개최해 배설물 청소, 급식소 주변환경 정비 등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캣맘과 캣대디로 인한 갈등은 동래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부산시가 시도 중인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와 관련해서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캣맘‧캣대디들이 각 구·군청에 급식소 설치를 요청하고 설치된 급식소에 캣맘들이 자율적으로 사료와 물을 채우는 시설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총 143개의 길고양이 급식소가 마련됐다.
하지만 지자체에서 설치한 급식소 외에 일부 시민이 설치한 급식소에서는 주변 환경 정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길고양이 개체수를 줄이는 중성화수술과 함께 관련 홍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과 함께 ‘서울시 길고양이 돌봄 기준’을 마련해 길고양이 돌봄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2018년 서울시가 마련한 돌봄 기준에는 길고양이 배설물 등 주변 환경 청소, 민원 발생 시 객관적인 자세 유지와 소통 등 길고양이를 돌보는 시민들이 알아야 할 원칙이 담겼다. 반면 아직 부산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돌봄 기준 등의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부산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길고양이 중성화 지원체계 구축사업 등 제도적 지원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시 동물복지지원단 관계자는 “중성화 수술을 병행하면서 길고양이로 인한 배설물 민원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고양이용 모래를 동물보호단체에게 지원하는 등 관련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책임의식 강화를 통해 길고양이와 시민들이 함께 공존할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