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曜野話

입력 : 1959-10-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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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都艶史

朴容九 作/閔伯鄕 畵

德宗, 靖宗, 文宗

현종(顯宗)은 비빈도 많았거니와 오자 괄녀 열셋 아들딸이 있었다.

현종의 돌아간 뒤에는 그의 아들이 다음을 이었으니 제구네 덕종(德宗)이다. 그러나 덕종은 왕위에 있은지 겨우 삼년만에 열아홉살로 돌아갔다.

그 다음은 덕종의 아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니 제십대 정종(靖宗)이다. 정종은 왕위에 있은지 십이년만에 서른세살로 돌아갔다. 다음은 또 그 아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니 제십사대 문종(文宗)이다. 즉 현종이 돌아간 뒤에는 세 아들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덕종의 비빈은 경성왕후(敬成王后), 효사왕후(孝思王后), 경목현비왕씨(敬穆賢妃王氏), 이씨(李氏), 유씨(劉氏) 등이다.

경성왕후는 현종의 공주로서 원순숙비 김씨(元順淑妃 金氏)의 소생이니 덕종에게는 어머니가 다른 누이동생이었다.

효사왕후는 역시 현종의 공주로서 원혜태후 김씨(元惠太后 金氏)의 소생이니, 덕종에게 있어서는 역시 어머니가 다른 누이동생이었다. 더구나 덕종의 어머니인 원성태후 김씨(元城太后 金氏)와 원혜태후 김씨는 친형제간이니 이 결혼관계는 혼란의 극치중의 하나이다.

경목현비 왕씨는 중서령(中西令)이었던 왕가도(王可道)의 딸이다. 현종의 비빈이었던 원질귀비 왕씨(元質貴妃 王氏)가 역시 왕가도의 딸이다. 즉 왕가도의 딸 형제중 형은 현종의 비빈이 되었고, 아우는 그 아들인 덕종의 비빈이 된 것이다. 여자형제가 시어머니 며느리의 관계가 된 예이다.

정종의 비빈은 용신왕후 한씨(容信王后 韓氏), 용의왕후 한씨(容懿王后 韓氏), 용목왕후 이씨(容穆王后 李氏), 용절덕비 김씨(容節德妃 金氏), 연창궁주 노씨(延昌宮主 盧氏) 등이다.

용신황후 한시와 용의왕후 한씨는 다 같이 한조(韓祚)의 딸로서 여자형제가 같은 왕의 비빈이 된 것이다.

용목왕후 이씨는 공부시랑(工部侍郞)인 이품언(李稟焉)의 딸이다. 그런데 덕종의 비빈인 이씨가 역시 이품억의 딸이다. 즉 남자형제와 여자형제가 있어 각기 형은 형끼리, 아우는 아우끼리 맺어진 관계이다. 남자 여자 어느쪽에서 보나 동서간이 서로 친형제였다는 것이다.

문종의 비빈은 인평왕후(仁平王后), 인예순덕태후 이씨(仁銳順德太后 李氏), 인절현비 이씨(仁節賢妃 李氏), 인목덕비 김씨(仁穆德妃 金氏) 등이다.

인평황후는 현종의 공주로서 원성태후 김씨의 소생이니 어머니가 다른 누이동생이다. 그리고 문종의 어머니인 원해태후 김씨와 원성태후 김씨가 친형제간이었다. 이것은 위에서 이미 든 덕종과 효사왕후와의 관계를 남자, 여자의 입장만을 바꿔놓았을 뿐 완전히 동일한 형이다. 또한 덕종과 문종은 어머니가 다른 형제로서 서로 상대방의 누이동생을 바꿔서 비빈을 삼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 어머니끼리가 친형제였다니 복잡할 수밖에…

인예순덕테후 이씨와 인경현비 이씨와 인절현비 이씨는 다 같이 중서령(中書令)인 이자연(李子淵)의 딸이다. 즉 딸 삼형제가 다 같이 한 왕의 비빈이 된 것이다.

일찍 문종의 아버지인 현종은 김은전(金殷傳)의 딸 삼형제를 모조리 비빈을 삼아 원성태후, 원혜태후, 원평태후라 일컬었다. 이제 현종의 아들인 문종이 이자연의 딸 삼형제를 모조리 비빈으로 삼았으니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할 만한 관계이다.

인목덕비 김씨는 시중(侍中) 김원충(金元沖)의 딸이다. 정종의 비빈인 용절덕비 김씨가 역시 김원중의 딸이다. 즉 남자형제와 여자형제가 각기 형끼리 아우끼리 맺어진 관계다. 이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덕종이 비빈인 이씨와 정종의 비빈인 용목왕후 이씨 사이에도 벌어졌던 것과 같은 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정종은 그의 형 덕종의 비빈인 이씨의 친아우를 자기의 비빈으로 삼았으며 또 자기의 비빈인 용절덕비 김씨의 친아우가 정종 자신의 아우인 문종의 비빈이었던 것이다.

덕종, 정종, 문종 삼형제 삼대에 걸친 이 왕들을 둘러싼 비빈관계는 혼란과 복잡을 극하였으니 가관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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