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名門 7

입력 : 1994-02-16 09:56:09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안재형·유남규 등 스타산실



이때 데려온 선수가 안재형(동아증권 코치) 이정학(동아증권) 배종학(덕천여중) 등. 1학년이던 이들은 창단 첫해 종별선수권대회 등 3개 대회를 휩쓸어 한국탁구계에 광성공고의 이름을 드높인다. 이들이 3학년이 되자 「탁구천재」 유남규(동아증권)가 입학하게 된다. 안재형 이정학 유남규가 함께 활약한 광성공고가 전국 최강의 자리에 군림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안·유 두 사람이 후일 한국탁구의 간판으로 성가를 높인 것은 주지의 사실. 창단 이후 유남규가 졸업하기까지 광성공고는 전국대회 단체전서 우승 7번 준우승 3번을 기록했고 개인전에선 단식 9번 복식 7번의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듯 놀라운 성적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학교당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감독 코치의 피땀 어린 지도 때문. 그러나 창단 이후 지금껏 광성공고 탁구부를 길러온 주인공인 성용제 코치(51)는 『운이 좋아서 좋은 선수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일축한다.

광성공고 탁구부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운 때가 있었다. 87년 이후 근 5년간 단체전 개인전을 막론하고 한번도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이 침체의 길을 걸으면서 재정적인 어려움까지 가중되었다. 일종의 위기였다. 사실 광성공고 탁구부는 수원 시온고, 대구 심인고, 대전 동아고 등 전국의 탁구 명문고 중 가장 열악한 시설에서 훈련을 해왔다. 체육관이 없어 영선국교 강당을 빌려 썼다. 부산에는 연습상대가 없어 다른 지역을 돌며 훈련을 해야 하는 까닭에 비용도 만만찮았다. 여전한 어려움 속에 91년 「탁월한 신예」 김봉철(19·동아증권)이 입학하면서 광성공고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제38회 종별대회 개인단식 우승(김봉철)을 시작으로 3년간 7번의 전국대회 우승을 기록하고 특히 지난해에는 대통령기 등 3개 대회를 석권, 창단때의 영광을 재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모 재단인 국성학원(이사장 김대성)에선 올해 중 부지를 확정해 수년 내 학교를 옮겨 짓고 체육관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혀 밝은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12년간 광성공고는 부산 유일의 남고 탁구팀으로 외로운 자리를 지켜왔다. 기실 팀을 창단하려 해도 초중학교의 팀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대학팀이 없어 진로도 보장되지 않았다. 해서 부산의 남자선수는 대부분 영선국-남일중-광성공고로 연계육성의 길을 걷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팀이 적은 까닭에 오히려 연계육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늘에서 땀 흘리는 지도자들과 어려운 여건에서도 탁구육성에 애쓰는 학교관계자들의 염원이 모아진 곳이 광성공고임을 알 수 있다. 그곳을 부산탁구의 요람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