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8일에 발생한 명성황후 시해사건 두 달여 뒤에 당시 경성(서울) 주재 주한 일본 일등영사 우치다 사다쓰지가 작성해 본국에 보고한 이 사건 보고서가 공개됐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62) 교수는 우치다가 같은 해 12월 21일자로 작성해 본국 외무성 차관에게 제출한 시해사건 보고서인 '한국 왕비 살해 일건 제2권'이란 문건을 일본 외무성 부설 외교사료관에서 찾았다고 13일 밝혔다.
이 교수는 당시 시해사건 정황을 담고 있는 이 보고서가 일본 본국에 제출된 시점이 이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히로시마 재판이 열린 1896년 1월 20일보다 약 한 달 가량 앞선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보고서로 판단할 때 일본 정부는 이미 재판 개시 이전에 시해사건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러나 이 보고서가 재판 과정에서 (증거서류 등으로) 채택되지 않은 점을 볼 때 일본이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기존에 알려진 시해사건 실상과는 다른 점이 군데군데 엿보이는가 하면 일본 낭인을 앞세워 획책된 사건 진행 과정이 사건 발생장소인 당시 경복궁 관련 지도로 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번 문건에 의하면 낭인들은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정문인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침입해 경회루 왼쪽을 지나 명성황후 침소인 건청궁으로 들어가 이 궁역 어딘가에서 명성황후를 찾아내 시해했다.
명성황후는 건청궁 구역 안에 자리잡은 장안당과 곤령합 사이 뜰로 끌려 나와 시해됐으며 그 시신은 곤령합 동쪽 건물인 옥호루 방 안에 안치됐다가 건청궁 동쪽의 인공산인 녹산 남쪽에서 불태워졌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명성황후 시해 장소는 옥호루 실내로 알려져 있어 이런 차이에 대한 면밀한 사료 비판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