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레코드를 보면 한국현대사가 보입니다. 끔찍한 해난사고 뒤에는 대중가요가 어김없이 그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했어요."
우리나라의 해양·항만사의 이면을 대중가요로 비춰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박명규 한국해양대 교수가 대중가요들의 역사적 배경을 해상사고로 분석해 관심을 끈다. 선박설계가 전공인 그는 해난사고 관련 전문가이기도 하다. '해난사고로 본 대중가요'라는 글이 모 잡지에 연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1967년 한일호 충돌 참사 소재 -'비운의 한일호'
·1970년 남영호 전복 관련 -'밤항구 연락선'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 -'님실은 페리호' 개사
그에 따르면 해방 후 우리 정부는 조선사업에 뛰어들 형편이 안돼 선박수리에 주력하면서 침몰된 선박 인양작업을 활발하게 벌였다. 1943년 목포항 앞바다에서 연합군 비행기의 폭격을 받아 침몰한 화물선 푸르트호를 인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1951년 목포에 파견된 기술자들이 목포 아가씨와 결혼해 살림을 차리곤 했고, 이듬해 인양선박이 수리를 위해 부산으로 옮겨지면서 기술자들의 애인과 가족들도 함께 부산으로 왔다. 박 교수는 "목포에서 온 여인네들은 낯선 부산 땅에서 이난영의 노래 '목포는 항구다'로 향수를 달래며 부산에 정착하게 됐다"고 전했다.
1953년 부산~여수를 운항하던 여객선 창경호가 다대포 앞바다에서 침몰한다. 무려 330명의 목숨을 앗아간 창경호는 사실 미군 폭격기에 의해 손상을 입고 침몰한 관부연락선 '천신환'을 수리한 것이었다. '여수야화'(반야월 작사/박시춘 작곡/방태원 노래)는 '바람찬 돛대머리 갈매기 슬피울 때/내사랑 싣고 가는 부산행 천신환아'라며 천신환을 기억하고 있다.
1967년에는 부산~여수를 연결하는 목선 정기여객선 한일호와 해군 구축함 충남73함이 가덕도 서북방 해상에서 충돌, 75명이 실종되는 해상 참사가 일어났다. 승객명부에 기재되지 않은 영세상인 등 가난한 서민들의 죽음은 당시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차거운 북동풍이 몰아치는 밤 목메인 고함소리/울지도 못하고 그 순간 앗아갔네 수많은 생명~'라고 노래한 '비운의 한일호'(백년초 작사/최명진 작곡/김정애 노래)가 그때 나온 가요.
1970년 해운 사상 최대의 참사인 남영호 전복사고도 언급되지 않을 수 없다. 부산과 제주도를 운항하는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326명이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기존의 노래를 개사한 '밤항구 연락선'(반야월 작사/송운선 작곡/은방울자매 노래)이 나왔으나 '쌍고동에 허공 실어 침몰된 남영호야'라는 내용이 국가위신을 훼손한다며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1993년 292명이 사망한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때도 부산에서 음악활동 중인 홍기표·양병철씨의 '님실은 페리호'(1989년)를 역시 당시 정서에 맞게 개사해 강달님이 야심차게 불렀으나 그리 뜨지는 못했다.
이 밖에 박 교수는 천지호, 연호, 한성호, YTL, 엔젤호 등 군함과 여객선은 물론, 원양어선의 사고와 아픔을 그린 대중가요도 분석하고 있다. "바다 노래가 1980년대 이후 점점 사라진다. 노래들의 배경에 서린 역사적 사건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김건수 기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