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패배주의가 낳은 '젊은 우익', 국가주의 부추겨

입력 : 2011-08-22 10:38:00 수정 : 2011-08-23 1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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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도쿄 후지TV 방송국 앞에서 열린 '반 한류' 시위 모습. '일본을 모욕하는 TV 필요없다' '불공정 저널리즘 스톱' '후지TV, 날조 편향보도 반대' 등의 구호가 보인다. 출처=일본 인터넷뉴스 사이트 '가제트통신'

일본의 젊은이들이 수상하다. 최근 수 년 새 급격히 우편향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 중심에는 인터넷이 있다. 일본의 우익(右翼)이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성능 확성기를 장착한 가두선전 차량. 그래서 일본 우익을 '가선(가두선전의 준말) 우익'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최근 확성기가 사라지고 인터넷 게시판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도구가 바뀌었다는 것은 도구를 이용하는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우익이 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넷토우요쿠'가 주도한 '후지TV' 사태

21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후지TV 방송국 앞에서는 6천여 명의 일본인들이 모여 "일본의 대표 민영방송사인 후지TV가 한류 드라마와 K-POP(한국 가요)을 너무 많이 방송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른바 '반(反) 한류' 시위였다.

시위의 발단은 한 일본인 연예인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지난달 말 다카오카 소스케라는 일본 남자 배우가 트위터에 '후지TV를 보고 있으면 마치 한국의 방송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것. 그러나 이를 세간에 증폭시킨 것은 바로 '넷토우요쿠(ネット右翼)'들이었다. '넷토우요쿠'란 한국어로 '넷우익(Net右翼)'이라는 뜻으로 '인터넷 상에서 활동하는 우익 누리꾼'을 의미한다.

다카오카의 발언 직후 인터넷 익명게시판 사이트인 '니첸나루(www.2ch.net)'에서는 500건 이상의 관련 게시물과 그 수 십배에 달하는 댓글이 일시에 난립했다. 게시물은 대체로 다카오카를 옹호하며 한류의 확산을 우려하는 내용. 22일 현재까지도 게시판은 여전히 뜨겁다. 그리고 이같은 인터넷 게시판의 열기는 지난 7일과 21일의 거리 시위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 뿐만이 아니다. 교과서 개정, 영토 문제 등 여러 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커지고 있는 보수우익의 목소리를 따라가 보면 그 중심엔 항상 우편향 인터넷 사이트와 '넷토우요쿠'가 있다.


 우편향 일본 젊은이들
 보수·진보 불문하고
 자국 이기주의 드러내

'日방송국 점령 의도' 등
 근거 없는 한국 비방
 인터넷서 확대재생


■인터넷 속에서 '카더라'식 확대재생산

일본 국내에서 우익적 논리와 인터넷이 조우한 것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이른바 '~카더라'식의 악의적 소문이 진실인 양 확대재생산되고, 심지어 엉뚱한 '마녀사냥'까지 횡행한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후지TV 내부자로부터의 고발'이라는 글까지 인터넷에 떠돌며 사건을 부풀리고 있다. 문제의 글은 '외국(한국)에 의한 경영권 다툼이 치열하다'며 '경영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다'는 등 마치 한국의 전략에 의해서 일본 방송국 점령이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런 음모론이 인터넷 상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번져나간다.

뿐만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번 사태는 최초의 본질을 벗어나 재일한국인들의 권익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 '니첸나루'에서 '후지TV'를 검색하면 엉뚱하게도 그 내용이 '재일한국인'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연결고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후지TV는 친한(親韓)적이다'라는 내용이 어느덧 '후지TV에서는 재일한국인 범죄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로, 다시 '재일한국인들은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납세의 의무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로 바뀐다. 그리고 '외국인 참정권은 실현되어선 안된다'는 논리에 이른다. 인터넷의 익명성, 선정성이 우익들의 패거리주의를 부채질한 결과다.


■장기불황·패배주의가 2000년대 젊은 우익 양산

이처럼 200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히 두드러지는 일본 젊은이들이 우익적 경향은 일본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현상. 도쿄공과대학의 다카하라 모토아키 교수는 자신의 논문 '젊은이의 우경화와 신 내셔널리즘'에서 최근 20대의 우경화 배경으로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출범을 들고 있다.

당시 일본은 버블 붕괴와 장기 불황,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부상 등으로 일종의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의사 표명, 자위대의 집단 자위권 용인 등 고이즈미의 강경한 보수적 방법론은 어쩌면 젊은이들로부터 패배주의를 털어내는 가장 간단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최근의 우편향 젊은이들과 기존 우익 세력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답으로 2000년 이후 젊은이들은 진보와 보수의 구분을 넘어서 양측 모두 국가주의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흔히들 '보수우익'이 곧 '국가주의'라고 연결짓는 경향이 있지만, 2000년 이후의 일본에선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도 국가주의를 옹호하는 움직임이 확대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에 대해 도쿄쓰다쥬쿠대학 카야노 도시히토 교수는 "외국과의 경쟁으로 자국 경제가 위축되면 결국 그 피해는 사회적 강자가 아니라 약자에게 돌아간다"며 "따라서 사회적 약자, 그리고 그들의 편에 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마저도 외국을 배척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어려운 경제 상황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국 이기주의'를 지지하도록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후쿠오카=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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