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짝꿍 생일마다 작곡발표회 하는 남편,결혼기념일마다 예쁜 편지 건네는 아내
안일웅의 작품 속 가사가 필요한 부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소자의 몫이다. 안일웅은 베토벤을 읊조렸고, 한소자는 셰익스피어를 말했다. 김병집 기자 bjk@ 경주 노서리 고분군을 따라 가만히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예뻤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언저리쯤이었다.
황혼기의 그들처럼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시간을 꾹꾹
눌러놓은 흙을 밟으며 나직하게 불렀다.
안일웅(71)은 '하~안'이라고 발음했고,
한소자(71)는 '아~안'이라 화답했다.
두 사람의 영어 이름을 합친 거다.
부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온종일 붙어 다닌다.
"혼자 다니려면 이상해요. 애틋해서가 아니라
같이 다니는 게 생태화된 것 같아요.
그들이 사는 울산 울주군 온양읍
상아대안 아파트 이정화 관리소장도
이런 말을 들려준다.
"너무 다정하게 다니셔서 이사 온 지
넉 달밖에 안 됐는데,
아파트에 소문이 짜하게 났어요.
저렇게 나이 들어가야지, 생각해요."
연대 작곡과 - 숙대 영문과 58학번
문학의 밤 행사서 서로 필 꽂혀…
10여 년 유방암 투병 아내 지극정성 간호
지난 5월 마침내 병마서 해방 기쁨
"피곤해하면 혹시나 해서 가슴 졸여…
내 모든 일상 아내를 위해 존재하죠"
안일웅은 작곡가다. 미술이 공간을 그린다면, 음악은 시간을 연주한다. 특별한 시간의 기억으로 짠 음악회의 막을 올린다.
■12월 26일=1악장 알레그로 아마빌레(경쾌하고 사랑스럽게)
1968년 12월 26일 오후 7시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안일웅 작곡발표회가 열렸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에 누구보다 귀 기울이는 이가 있었다. 몇 시간 전인 낮 12시 30분에 바로 그 장소에서 안일웅과 결혼식을 올린 한소자였다. 신부에게 헌정하는 작곡발표회였다. 그 닷새 전 신문 한 귀퉁이엔 이색적인 작곡발표회와 결혼식에 대한 사연이 실려 있었다. 지금도 부부는 결혼기념일이 되면 꼭 여행을 떠난다.
둘은 58학번이다. 안일웅은 연세대 작곡과, 한소자는 숙명여대 영문학과 1학년에 다닐 때 처음 만났다. "숙대 문학의 밤을 하는데, 국문과 학생의 낭송 드라마에 음악이 필요하대요. 원래 작곡과 선배에게 청이 들어왔는데, 저보고 하래요. 한 소절 만들어서 갔는데, 거기서 짝꿍을 처음 봤어요. 짝꿍은 아마 영시를 낭송한 것 같아요." 옛일을 더듬던 안일웅의 입에서 짝꿍이란 말이 나온다. "애가 없으니까 누구누구 엄마, 이렇게 못하고, 여보 자기는 껄끄러워서 못 하고…."
■9월 26일=2악장 아다지오 라멘토소(느리고 비통하게)
1999년 9월 26일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대단히 중증인데, 수술이나 한 번 해 봅시다, 그래요. 수술해서 괜찮다고 하면 용기를 내서 덤벼들 텐데, '수술이나'라고 하니 얼마나 절망적이었던지." 차일피일 미루다 검사를 했는데, 유방암 3기에서 4기로 넘어가는 중이란 진단이 나왔다. "짝꿍에게 왜 이상하단 말을 안했는지 물었더니, 강의 준비한다고, 곡 쓴다고 바쁜데 차마 미안해서 검사해 봐야겠다는 말을 못했대요."
암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약 먹는 시간을 철두철미하게 지켰는데, 이게 또 힘들었어요. 아침 식사 한 시간 전에 먹는 약이 있어요. 저흰 보통 오전 6시면 식사를 해요. 전 오전 4시면 일어나는데, 야행성인 짝꿍은 늦게 일어나는 편이에요. 6시에 식사하려면 5시엔 자는 사람을 깨워서 약을 먹여야 하잖아요."
심리적 불안감도 컸다. "살다 보면 감기 몸살도 드는데, 그런 것도 혹시 잘못되어가는 징조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요. 피곤해하거나 힘들어하면 또 잘못돼 가는 건 아닌지 걱정됐고." 동아대 초빙교수였던 안일웅의 일상은 암 환자 한소자에게 묶여 있었다.
■8월 23일=3악장 아다지시모(매우 느리고 고요하게)

2011년 8월 23일 이사를 했다. 34년 동안 살던 광안리 주택을 팔고 울산으로 이사를 온 거다. "광안리 주택이 50평가량 됐는데, 24평 아파트로 이사를 왔어요. 모든 걸 압축하기로 했어요. 생활이며 생각이며, 죄다 압축하자 했지요."
둘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한소자의 말이다. "광안동 집은 두 사람이 점유하기엔 공간이 커요. 좁은 공간으로 가자고 했지요. 아프다는 핑계로 집안일도 못하게 했는데, 이젠 새색시처럼 해야 할 일을 해야죠."
신용카드는 원래부터 없었고, 가지고 있던 차도 처분했다. 본의 아니게 이사 오면서 휴대폰을 샀다. 안일웅의 말이다. "휴대폰 가진 것도 얼마 안 됐어요. 처음 휴대폰을 산 지난 4월 22일 일기에 이렇게 썼어요. '속물이 되어감. 휴대폰에 손듦.'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놨는데, 부동산 소개소에서 집을 비우고 나가면 연락할 수가 없었어요. 집 팔려고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산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연락할 길이 없으니까요."
■8월 20일=4악장 아 피아체레(자유롭게)
1940년 8월 20일은 안일웅이 세상에 신고식을 한 날이다.
그는 3대 독자다. 자원해서 해병대 군악대에 갔다. 복학해서 나운영 선생의 가르침을 받던 대학 3학년 때, 그는 폭탄선언을 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결혼 안 한다고 그랬어요. 3대 독자인데 결혼 안 한다고 하니까 발칵 뒤집혔어요. 어머니가 어디 가서 점을 보고 오셨는지, 너 결혼 안 하면 너도 죽고 우리 집안도 망한다고 해요." 사연인즉 이랬다. 자손을 볼 요량으로 일찍부터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성화가 빗발쳤다. 한소자와 결혼하겠다는 카드를 내밀었다가 거부당했다. "짝꿍과 안 한다면 결혼 자체를 안 하겠다고 했어요. 짝꿍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저 혼자 결혼하겠다고 그런 거죠. 한참 뒤에 후손을 보기 위해서라도 원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라고 승낙하셨죠." 또 다른 폭탄선언이 이어졌다. 결혼하면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 불효막심한 일이긴 하지만, 인습에 젖어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한 생명체를 잘못 키우고 잘못 교육하면 이건 그 생명체에 대한 죄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아예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5월 30일=5악장 비바체 칸타빌레(빠르고 노래하듯이)
2011년 5월 30일, 마침내 10년간의 '음식계엄령'이 해제됐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젠 정기검진 오지 말고, 먹고 싶은 걸 먹어도 된다고 그래요. 진료도 더는 필요 없고, 약도 끝나고. 살 것 같데요."
안일웅은 그 다음 날 아침 식탁을 잊지 못한다. "아침에 빵 한 조각이랑 커피 한 잔을 줬더니 짝꿍이 울더라고요. 음식이 맛있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걸 먹게 됐으니 이젠 정말 살아난 거구나, 그걸 실감한 감사의 눈물이었어요. 그날 아침 우리 집 식탁 분위기가 묘했어요. 10년 투쟁을 승리로 끝내고, 음식계엄령에서 풀려난 거니까요. 새롭게 출발하는 기점으로 삼자는 이야기도 나눴어요."
잘 키울 자신 없어 아이는 낳지 않아
누구 엄마 대신 짝꿍이라 부르죠…
올해 34년 살던 광안동 주택 팔고 울산행
지출이며 생활이며 모든 것 압축
신용카드도 차도 없지만 불편하지 않아
휴대폰 산 지도 1년 안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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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넘게 부부는 시간만 나면 경주 노서동 고분을 산책한다. 뒤쪽에 있는 산등성이를 닮은 고분이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김병집 기자 bjk@ |
■5월 26일=6악장 모데라토 돌체(보통빠르기로 우아하게)
1940년 5월 26일은 한소자가 태어난 날이다. 약골이었다. 결혼할 때의 몸무게가 37kg. 안일웅의 집안에서 결혼 승낙을 주저했던 이유다.
"평생 헤어스타일을 한 번도 안 바꿨어요. 가운데를 나눠 가르마 타고 쪽 찐 단정한 스타일이에요. 지금도 1년에 딱 두 번 미장원 가요. 한 번은 짝꿍 생일, 한 번은 결혼기념일 즈음해서 미장원엘 가요." "동갑도 아니고, 연상도 아니고, 3개월 '월상'의 여인과 함께 산다"고 껄껄 웃으며 안일웅이 한 말이다.
안일웅이 반한 것도 그런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데이트하면서 해진 옷을 입고 나왔는데,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성격이었어요. 상당한 자의식이 있었던 거죠." 한결같기는 그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에 작은 가시라도 박히면 뽑아주는데, 여동생이 그걸 보고 깜짝 놀라요. 어릴 때 봤던 형부의 모습 그대로니까요."
짝꿍의 생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안일웅은 1965년 3월 서울 국립극장에서 첫 작곡발표회를 한 뒤 지난 2006년 5월 16일까지 스무 번의 작곡발표회를 했다. 그중에서 상당수의 작곡발표회가 5월 26일 즈음이다. "작곡발표회 횟수가 다른 작곡가 보다 많은 이유가 있어요. 그것도 5월에 집중돼 있지요. 짝꿍 생일 축하 선물이에요. 보통 하룻밤 작곡발표회에 들어가는 비용이 300만~500만 원인데, 그렇게 계산하면 수백만 원짜리 생일 선물을 하는 셈이지요."
"살아가는 모든 것이 감동인데, 감동의 연속이 자꾸만 파장을 가져온다"고 한 한소자의 말에 진심이 담겼다.
■3월 22일=7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1969년 3월 22일 부부는 부산진역에 내렸다. 결혼하고 석 달이나 지난 지각 신혼여행이었다. 한소자는 당시 김지태 씨가 운영하던 한국생사에 다니고 있었고, 안일웅도 밤에는 작곡하면서 낮엔 아성가발이란 가발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밥벌이를 위해서였다.
부산과는 한소자가 피난 시절 부산여상에 다닌 인연밖에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을 꼭 찾아뵙고 싶었다. 미술평론가인 이시우 선생이다. "부산여상에 계시던 이시우 선생님께서 광복동 7커피숍에 자주 가셨대요. 그곳에서 선생님을 만났죠."
이시우 선생과의 만남은 그들의 삶을 바꿨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는 여기서 활동해라. 윤이상도 여기서 뼈를 다져 유럽에 가서 재능을 인정받았는데, 너도 여기에 씨를 뿌려봐라, 이러시는 거예요." 생계문제가 얽혀 있다며 주저했더니 당장 학교를 소개해줬다. 금정중학교였다. 서울로 돌아갈 작정으로 둘 다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냈지만, 1년만, 2년만 하다가 그게 42년이 됐다.
금정중학교를 거쳐 부산여상에 있던 시절, 안일웅은 부산 최초의 음악적 사건을 벌였다. 속된 말로 부산시립교향악단 전체를 사서 관현악 작품 발표회를 연 것. 1970년 4월 9일 부산 왕자극장에서다. "당시 부산시향 지휘자가 오태균 선생님이었는데, 이시우 선생님이랑 단짝이었어요. 저도 몇 번 술자리에 끼다 보니 오태균 선생님께서 정기연주회 때 쓸 곡 하나를 써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발표한 교향시가 반응이 좋았는데, 그 인연으로 덜컥 관현악 작품 해 보고 싶다고 간청을 드렸죠."
부산여상 바로 뒤 단칸방에서 전세살이하던 안일웅은 전세금을 빼서 작곡발표회 비용으로 댔다. 전세금을 다시 걸 때까지 은행금리로 월세를 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2월 24일=8악장 템포 디 마르치아(행진곡의 빠르기로)

2012년 2월 24일 독일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안일웅 집중조명의 밤이 열린다. '생의 한가운데 Ⅲ'를 주제로 한 작곡발표회다. 아시아 작곡가론 이례적으로 다름슈타트에서 세 번씩이나 집중조명의 밤을 여는 것.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는 작곡가 윤이상의 데뷔 무대로도 유명한 음악축제다.
"독일 다름슈타트 음대에 다니던 제자가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제 작곡발표회 프로그램을 보냈어요. 선생님도 이렇게 열심히 곡 쓰고 있다며 힘내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 거지요. 그걸 당시 지도교수이자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 총감독이던 토니 퓔커 교수에게 보여준 거예요. 제 프로그램이 별나잖아요. 그걸 보고 토니 퓔커 교수가 독일에 오면 꼭 뵙고 싶다고 전하래요. 무용음악을 한창 쓸 때인 1997년에 포르투갈에서 재판 없이 무용수를 사형에 처한 일이 있어서 국제무용작곡가협회 차원에서 항의하러 리스본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다름슈타트에 잠깐 들렀는데, 제자가 덜컥 토니 퓔커 교수에게 연락해서 만나게 된 거지요. 1998년 음악제 때 윤이상 선생 바이올린 곡하고 제 작품이 연주됐는데, 동양 사람 작품은 딱 둘이었어요."
그의 작품은 파격적이고 과감하다. 전자음이 천장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무용수가 꽃을 뿌려대기도 한다. 성격은 안 그런데 작품은 어찌 그리 드라마틱하냐고 묻자, 이런 말을 한다. "한 번뿐인 우리 삶, 그런 짓도 하면서 살다 가야 하지 않겠어요."
사유집을 꼭 내고 싶다고 했다. "책 제목도 정했어요. '한 번뿐인 우리 삶을 정말 멋있게'. 둘이 만든 말이지만, 어려울 때 위로를 받는 말이 그 말이었어요."
결혼기념일과 안일웅의 생일이면 한소자는 작은 선물과 함께 식탁에 예쁜 편지를 놔둔다. 그중 하나. '언제나 우리 삶의 깊이에서 건져낸 소금이실 것을.-이천구년 팔월 스무날 AHN's HAN'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안일웅이 보내는 편지
긴 투병 견뎌낸 당신 외유내강한 사람 행복만 가득하길
덧없는 삶 속에서 마흔세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게 되는구나. 이번은 '하-안'에게 이 얘길 꼭 들려줘야지.
"하~안! 올해 우리 결혼기념일은 어느 해보다 뜻깊은 날이야. 그 고통스러웠던 투병을 승리로 끝내고 맞는 날이기 때문이야. 어둔 그림자 같았던 십 년 동안의 투병은 이처럼 밝은 햇살을 잉태하고 있었나 봐. 옹알이처럼 뇌이던 '어둔 그림자는 밝은 빛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 백 번은 들었지?
이제 하~안은 갓 결혼한 신부처럼 들뜬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 거야. 강한 신념은 다부진 소신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아? 마치 새 출발을 다짐하는 것처럼 소신 있게 살아갈 것을 믿는 거야.
물론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때도 있겠지. 그건 삶의 당위적 속성 아니겠어? 게다가 우린 삶의 가장자리에 와 있기도 하고…. 하지만 하~안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보물 같은 걸 지니고 있지 않아? 어떤 것에 체념이나 단념하지 없는 미덕 같은 것 말이야. 그러기에 하~안은 소신껏 자신 앞의 삶을 살아가게 될 거야." 43주년 결혼기념일! 신 나는 날로 남겠구나. 삶은 꼭 덧없지만은 않나 보다.
한소자가 보내는 편지
작곡 할 때면 초인적 집념 남편은 멋진 남자
진숙아. 참 오랜만의 편지지?
형부는 올해도 우리 결혼기념일 나들이를 경주행으로 정해 놓고 내 가슴을 흔들고 있단다. 난 이번에 이런 말을 형부에게 꼭 들려주려고 한다. 뭔지 짐작되니?
우선 난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할 거야. 형부는 허약한 내 건강을 위해 언제나 헌신적이잖아? 투병하고 있을 때야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도 한결같이 내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그러기에 이렇게 건강해지고 또 여행도 다닐 수 있지 않겠니?
또 다른 하나는 작품 쓰는 일에 보탬이 되는 격려의 말을 할 거야.
진숙이 너도 잘 알겠지만, 형부는 정말 근성 있는 작가잖아. 너무 치열한 작업을 할 때는 무엇보다 건강이 걱정되기도 해. 그럴 땐 '아~안' 몸 생각도 하세요 라고 조언하곤 하지. 그럼 형부는 "나는 한다고 하면 합니다!" 그렇게 대꾸하는 거야. 정말 초인적이랄 만큼 집념이 강해
우리 내외가 숱한 고뇌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형부의 그런 남다른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인 것 같아.
진숙아~ 우린 결혼기념일 저녁 식탁에서 자축하는 건배를 들 거고, 그때 난 힘 있게 외칠 구호 아닌 구호를 준비해 두고 있단다.
"'아~안'은 멋진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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