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고 하면 두 번 세 번 의견을 묻습니다. 교육대를 대신 권하기도 하고요."
부산의 현직 고3 담임 여교사(영어 과목)의 고백이다. 중고교 정규직 교사 되기가 얼마나 험난한지 알기에 터득한 학생 지도 노하우다.
임용고시는 '바늘 구멍'이다. 따라서 사범대 졸업자 상당수는 사립학교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립 경쟁률 20 대 1 안팎
예비교사 상당수 사립 발길
안정감·연금 등 혜택 생각
학교 측 뒷돈 제의도 수용
공립처럼 임용시험 등 필요
■치열한 경쟁률, 1억은 기본
수학을 전공한 이 모(30) 씨는 지난해 부산 시내 한 사립 중학교에 정규직 교사로 합격했다. 7년간 학원 교사와 기간제 교사를 해가며 힘겹게 받은 이 선물을 그는 결국 포기했다. 학교 측이 이 씨에게 합격 소식을 알리며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8천만 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던 이 씨에게 너무 큰 돈이었다. 설사 그 돈을 장만한다 하더라도 그 뒤 교사로서 소신껏 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비정규직교사협의회 박은선 공동대표는 "지역에 따라 약간 다르긴 하지만 사립학교가 교사를 채용할 때 8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까지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사 채용 과정에 돈이 오가는 것은 지원자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학교가 '갑'인 것이다.
지난해 부산 지역에는 117명이 공립학교 교사가 됐다. 여기에 몰린 사람은 1천983명. 올해 예고된 부산지역 정원은 103명 뿐이다. 매년 20대 1 안팎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자연히 예비교사들은 사립학교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부산지역 사립학교에서 뽑은 정규직 교사의 수는 69명뿐이었다.
■"선생님, 정규직 되세요"
사립학교는 보통 몇 년 동안 우선 '기간제'로 교사를 고용한다. 교사 자질을 파악한다 것이 명분이다.
하지만 교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학교의 성향에 잘 맞는 교사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다.
박 대표는 "학교 측에서는 전교조에 가입할 성향인지, 학교 측의 말을 잘 듣는지를 점검한 후 정규직 제의를 한다"며 "전환 과정에 재단이 어려우니 발전기금을 좀 내놓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를 한다"고 밝혔다.
일부 교사는 은퇴 후를 생각하며 뒷돈 요구를 수용하기도 한다.
보통 사립학교 교사들은 20년 근속을 하면 매달 150만~200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30년이 되면 250만~300만 원으로 늘어난다.
한 교사는 "미래를 위해서 몇 년간 무료봉사를 한다고 생각하고 돈을 내는 교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교사 채용 과정의 비리는 교권 붕괴로까지 이어진다.
3년째 기간제 영어 교사로 근무 중인 김 모(35) 씨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얼른 정규직 선생님 되세요"라는 말도 들었다. 그는 "평가 때문에 학교 측을 의식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느껴진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교사가 학교 측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알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 측에 알리겠다며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립학교도 임용시험 도입을
사립학교에서 교사 채용 권한은 학교와 재단 측에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뒷돈 거래나 친인척 임용 같은 비리가 똬리를 트는 것이다.
부산의 한 중학교 행정실장(재단 이사장 조카)이 정규직 교사로 채용해 주는 조건으로 여교사 부모에게 8천만 원을 받은 것(본보 22일자 4면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기간제 교사들은 이런 문제를 잘 알지만, 정규직 자리를 포기하고 내부고발자가 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립학교처럼 사립학교도 임용시험를 쳐서 교사를 선발하는 게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 대표는 "1년 간 필요한 사립학교 교사의 규모가 예측이 되는 만큼 선발 인원에 맞춰 교사를 임용시험처럼 일괄적으로 치러 선발한다면 이러한 비리가 근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