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월타올은 1945년 박동수 회장이 동생 찬수 씨와 함께 창업한 회사다. 일본 사람이 두고 간 적산가옥을 불하 받은 부산 동구 범천동 자택에 양말 염색 공장을 차린 것이 시초다. 이후 박 회장 형제는 1949년 목직기 5대를 구입해 수건 제조사업에 뛰어들면서 송월타올공업사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6·25 전쟁 등으로 극심한 물자부족에 시달리던 시절 수건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초기자본을 축적한 송월타올은 1966년 부산 동래구 거제동에 대규모 공장을 신축하면서 국내 최대 타올업체로 성장했다.
가내공업으로 시작한 최대 타올업체
시설투자와 제품고급화로 성장 기반
1979년에는 극동타올을 흡수병합한 데 이어 1986년에는 전 공정에 걸쳐 자동화시스템을 구축, 타올업계의 정상 자리를 재확인했다. 1992년에는 중국 칭다오 공장을 설립, 중저가품을 담당토록 하고 부산공장에선 고급품을 생산하는 전략으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송월타올도 1997년 외환위기는 피해갈 수 없었다. 국내시장의 40%를 점하던 판매고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데다 연리 30%를 넘나드는 고금리를 견뎌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자금난에 허덕이던 송월타올은 1998년 1월 30일 부도사태를 맞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부딪힌 송월타올은 직원을 3분의 2로 줄이는 구조조정에 이어 박 회장 개인 소유의 부동산들을 매각하는 등 눈물겨운 재활 노력을 이어갔다. 노조도 이에 호응해 불량률 반감 운동에 나서고 대리점들도 선금을 내고 주문하는 등 3자가 똘똘 뭉쳐 회사 살리기에 동참했다.
그런 협조에 힘입어 송월타올은 당시 돈 31억 원을 시설 확충에 투자하고 디자이너 14명과 제품설계사들을 신규 채용하는 등 제품 고급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렇게 출시된 고급타올 샤보렌이 히트를 치면서 점차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1, 2002년 연속 흑자로 돌아선 송월타올은 2003년 4월 30일 부채를 모두 갚고 화의에서 탈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 송월타올은 2005년, 본사를 경남 양산시 유산공단으로 옮기고 2009년에는 베트남 호찌민 시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등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junsh@busan.com
정순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