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보이고 건강해 보이세요." 기자가 건넨 말에 "60대로 보는 사람도 많다"며 "배움이 삶의 활력소가 됐다"며 너스레를 떤다.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 부산여대 교정에서 만난 박덕채(89) 할머니는 13일 열리는 졸업식에서 졸업생 1천436명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흔을 앞둔 박 할머니는 전국 최고령 대학 졸업생이다.
박 할머니는 다소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졸업 뒤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다니다 말다 하다 졸업은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집안 형편과 관계없이 여자들은 공부를 끝까지 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들을 뒷바라지해 장가도 보냈고, 예쁜 손녀까지 둘이나 봤다. 40, 50대 시절에는 음악 소모임과 등산을 다니며 지냈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이 늘 오롯이 남아 있었다.
예순 넘어 고교 입학 향학열
오늘 부산여대 학사모 결실
"복지 배워 사회 봉사하고파"
"재밌게는 보냈는데, 뭔가 허전하더라고. 내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하신 수재셨어. 남편도 서울대 농대를 나온 뒤 교사를 했었지. 가족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나도 그런 피가 흐르나봐."
박 할머니는 예순이 넘으면서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먼저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검정고시 합격 뒤에는 부산골프고 만학도반을 다니며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더 큰 꿈이 생겼다.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할머니는 평소 일본어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도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던 터라 지금도 일본어를 말하고 쓰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아들 김용서(47) 씨는 할머니에게 일어일문학과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진로를 바꿨다. 같이 음악 소모임을 하던 지인의 '앞으로 사회복지가 중요해진다'는 말에 부산여대 사회복지재활과에 입학했다.
"일본어는 잘 하니깐, 사회복지 쪽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괜찮겠더라고. 이 나이에 일은 못 할 거고, 사회에 봉사를 할 수 있잖아."
2년 동안의 학교 생활은 어땠을까. "손녀 유치원 보내고 집안일 좀 하고 나오면서 지각은 좀 했어. 근데 결석은 감기 걸려 하루 못 간 것 말고는 없었어." 손녀뻘 되는 같은 과 동기들과의 생활과 진도 따라가기가 어려웠을 법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팀 과제를 열외시켜주려던 교수님들의 배려(?)도 거절하고 맡은 과제는 모자람 없이 수행했다. 졸업 평점도 준수하진 않지만 3.3 정도다.
박 할머니의 도전은 끝이 아니다. 현재 동명대 사회복지학과에 편입을 준비 중이다. 독서심리치료사 2급까지 10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문화관광해설사 분야에도 관심이 생겨 관련 자격증을 따는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다.
"공부를 해보니 공부를 하면 더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것 같아. 나야 남들이 다 하는 공부를 이제야 하지만, 누구든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신이 살아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도전을 해봐."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