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들의 동시로 엿본 역사와 문화

입력 : 2016-05-05 19:01:51 수정 : 2016-05-08 13: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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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사랑방은 저명 학자와 정치인들이 어린 시절 한시를 많이 쓴 곳이기도 하다. 부산일보 DB

'靑春亡社稷(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白首汚江湖(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조선 시대 수양대군을 도와 단종을 왕위에서 밀어낸 한명회가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며 쓴 시를 김시습이 딱 2자 바꿔 조롱한 시다.

'천성은 본디 맷돌 사이에서 왔으나/둥글고 빛나서 동산에 뜬 달과 똑같네//용을 삶고 봉황을 구운 진미보다는 못해도/머리 벗겨지고 이 빠진 노인에게는 제일 좋구나.' 이 시는 김시습에게 한 노파가 두부를 주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천하 진미보다 두부가 더 맛있다고 재치 있게 표현한 것. 첫 번째 시는 역사에도 등장해 유명하지만, 두 번째 시는 김시습이 5세 때 쓴 시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김시습·이이·이항복 등
어린 시절 지은 한시 선집
당시 어린이 세계 보여 줘


김시습만이 아니라 이이 이항복 이산해 정약용 등 저명한 학자와 정치가들도 어린 시절부터 한시를 많이 썼다. '내 생애 첫 번째 시'는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10여 년에 걸쳐 조선 시대 유명한 선비와 천재 시인 140명이 쓴 어린 날의 시 가운데 독창성과 예술성이 넘치는 우수한 작품 200여 편을 골라 담은 아동 한시 선집이다. 이 시들은 당시에는 유치하다고 평가해 선비들의 문집에는 대부분 수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은 한글로 해석한 시와 원문 한시를 함께 담았으며, 지은이와 작품에 대한 소개도 포함해 당시 어린이들의 세계와 역사, 문화를 생생히 접할 수 있게 했다.

내 생애 첫 번째 시 / 안대회
동몽시는 동심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동시와 비슷하지만, 한시의 형식으로 그 시대의 독특한 문화와 형식을 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옛 동시가 즐겨 다룬 주제와 소재는 우주에 대한 상상, 자연과 계절 묘사, 동식물과의 어울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 생활 주변의 사물 포착이며 이를 짧은 구절로 군더더기 없이 선명하게 썼다는 것이 특징이다.

책에서는 무엇보다 옛사람들이 어린 시절 어떻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성장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갔는지를 알 수 있다. 문학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자 선현들의 생각과 삶을 전하는 참된 길잡이가 되어 왔다. 시험과 취직에 도움이 되는 교재는 잠시 접어두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 옛 동시를 읽으며 문학의 가치를 느껴보면 어떨까. 안대회 편역/보림/348쪽/1만 5천 원. 박진숙 기자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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