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이야기] 자발적 미혼 싱글맘 김미애 변호사의 분투기
입력 : 2016-05-08 19:03:05 수정 : 2016-05-10 16:01:32
"우리도 아빠 키우자"란 아이 말에 가슴이 먹먹해져…
지난해 부산바다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김미애 변호사와 마음으로 낳은 딸 연아(가명)가 함께 환호하고 있다. 김미애 제공"엄마, 우리도 아빠 '키우면' 안 돼?" 우리 나이로 치면 여섯 살, 이제 겨우 네 돌 지난 아이가 검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이 말을 하는데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단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결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 그 상황이 미루어 짐작됐다. '자발적 선택'의 미혼 싱글맘 김미애(47) 변호사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가 저절로 이해됐다. 김 변호사가 어렵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통해 생명 있는 한 아이를 돌본다는 것의 어려움, 그리고 현 입양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개선점을 알아봤다.
■'자발적 선택'의 미혼 싱글맘
"처음으로 뻥쳤어요! 어린이집을 보낼 때만 해도 당당하게 공란으로 두었던 아빠 이름 칸에 유치원 생활기록부를 쓰면서 오빠 이름을 썼어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내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너무 싫었던 거죠. 불필요한 오해와 선입견을 없애고 싶었어요. 제가 변해가더라고요."
5년 전 생후 80일 된 연아 입양
세상 떠난 작은언니 아이도 키워
저체중아로 태어난 딸
119 부른 것만 대여섯 차례
도우미 없어 사무실 데려가기도
"쟤는 아빠 없잖아"란 말에 충격
아이는 사회가 키운다는 말 실감
생모 출생 신고 있어야 입양 가능
입양특례법 규정도 완화됐으면…
김 변호사는 5년 전인 2011년 11월 입양 기관을 통해 생후 80일 된 연아(가명)를 입양했다. 그것도 미숙아를 겨우 면한 저체중아(2㎏)로 태어난 아이를. 그동안 열경련 등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어 119를 부른 것만 해도 대여섯 번.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에도 쫓아가고, 밤을 꼬박 새우고 사무실에 출근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를 제때 구하지 못해 사무실에 데리고 출근하고, 재판을 마치자마자 사무실로 돌아와 기저귀부터 갈던 시절도 있었다. 그나마 자기는 개인 법률 사무실을 운영 중인 변호사였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지만 일, 가정 양립을 해야 하는 보통의 부모들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절로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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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발적 미혼 싱글맘 김미애 변호사의 '입양 분투기'를 담은 모습들. 김미애 제공 |
■주 중엔 둘, 주말에 셋 돌봐김 변호사는 연아 말고도 중학생 조카(J로 명명한다) 한 명을 더 키우는 중이다. 주말엔 또 한 명의 초등학생 조카(S)까지 보태져 3명이 될 때가 많다. 이번 어린이날에도 J와 S 두 조카와 연아, 이렇게 3명을 데리고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중학교 3학년인 J는 정식 입양이 아닌 미성년후견인 상태. 자신의 조혈모세포까지 기증했지만 끝내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작은언니의 아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함께 살고 있다. 이모지만 엄마나 진배없다. 시험 기간이 되면 여느 아이들처럼 공부도 봐 주고, 문제집 채점도 해 주고, 학교 시험 감독도 자청해서 간다. 연아와는 친 오누이처럼 크고 있다.
"미혼인데 어떻게 입양까지 결심했냐고요? S가 19개월 때(2007년) 형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망연자실해 있는 큰언니를 대신해 4년가량 키웠는데 아이가 주는 기쁨을 알게 됐어요. S는 글도 제가 가르쳤고, 소풍·학예회도 제가 따라다녔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긴 거죠. 결혼해서 아이를 낳더라도 입양을 생각했었는데 결혼을 안 할지는 몰랐어요."
■생모 출생 신고 없으면 입양도 힘들어집안 형편상 늦깎이 공부를 한 김 변호사는 29세에 법대 야간 학부에 들어갔다. 34세 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돈 없고 백 없는' 설움을 딛고 여성·아동·비행소년·가족법 관련 활동을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해 오던 터였다. 직업이 변호사여서 비교적 수월하게 입양과 개명 절차 등을 밟았지만 쉬운 건 아니었다.
"입양 기관에서 집에도 와 보고, 양육 계획서, 재정과 건강 상태도 확인했어요. 2011년 7월에 상담하고, 곧바로 신청했는데도 10월에야 연락이 왔더군요. 그 뒤에도 아이는 곧바로 데려올 수 없었고, 위탁가정에 더 머물렀어요. 강보에 싸인 연아를 처음 만난 날도 잊을 수 없어요.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있나 싶어서 살짝 들춰 보는데 아이가 제 새끼손가락을 꽉 잡는 거예요. 깜짝 놀라면서도 눈물이 핑 돌았어요."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입양이 가정법원 허가제로 바뀌면서 위탁가정에 머무는 시간도 더 길어졌다. 김 변호사는 이 기간도 줄여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양 절차에서 그 정도는 장애라고도 할 수 없었다.

"현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생모가 출생 신고를 하고, 동의해야만 입양 요건이 갖춰져요. 우리나라 정서상 쉽겠냐는 거죠. 생모가 굳이 출생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중앙입양원 같은 데서 관리하면 되잖아요. 법 개정 취지는 알겠어요. 해외로 입양된 아이가 고국을 찾아와서 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데,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생명권이 박탈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불법 낙태와 입양,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이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생모 출생 신고 의무라도 완화시켜 주면 좋겠어요."
■한 개인이 아닌 온 사회가 키우는 아이입양특례법은 왜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관심 있는 국회의원이 없는 탓이라고 김 변호사는 생각했다. 한때 출마를 생각했던 것도 그런 연유다. 입양뿐 아니라 아동학대, 비행소년 문제 등 현장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을 정치로 살려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입양 문화는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한 가정의 문제로만 남겨둬도 될 것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유치원 생활기록부 이야기도 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듣게 된 "쟤는 아빠 없잖아!"라는 말은 충격이었어요. 그 전엔 분명 나의 문제였는데, 이젠 우리 딸의 문제더라고요. '우리도 아빠 키우자!'는 말이 가슴 절절해지는 거예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죠. 아이는 나 혼자서만 키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정말이지 온 사회가 같이, 더불어서 키워야 한다는 걸요."

입양한 아이의 '공개 혹은 비공개' 여부도 물었다.
"일부에선 아이의 입양 사실이 알려질까 봐 이사를 가기도 하는데요. 그건 또 그 가정의 선택이니까 존중해 줘야죠. 아직은 이 사회가 그만큼 성숙돼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결혼도 안 했고, 배도 불러 보지 않은 상태에 가진 아이라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대신, 언젠가 아이가 입양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엄마가 얼마나 사랑하면서 키웠는지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아이한테도 늘 말해요. '넌 내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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