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중앙정부가 '지방재정 개편안'을 내놓았다. 지자체별로 재정 여건이 다르므로, 그나마 재정 형편이 나은 지자체들의 예산 일부를 삭감하여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에 이전 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일견 지자체 간 재정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중앙정부의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엄밀하게 이것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발상이다.
사실 지난해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사회보장 유사사업 문제로 충돌했었다. 지방정부의 지역살림이 중앙정부와 유사한 것이 많다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지역사업들을 통폐합하거나 삭제하기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지방자치제도하에서 이러한 살림간섭이 적법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쏟아졌다. 국가복지가 워낙 부족한 마당에 지역주민의 일상생활을 조금 더 도와주는 것은 지방정부의 당연한 일이기에, 중앙정부가 이를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많았다.
정부 정책 지방에 일방적 통보
타협 통한 갈등 해결 안 보여
중앙의 간섭 지방정부 흔들면
선거로 만들어진 민의에 역행
분권 개헌 부산 지지 70% 넘어
협력·분업이 지방자치의 본질
사소한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상반되는 견해가 존재하는데, 하물며 대한민국호(號)를 운행하는 선장단(團) 사이에 왜 이런 충돌과 다툼이 없겠는가. 갈등과 충돌은 그 자체로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충돌은 단순히 피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잘 다루어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지방재정 개편안'이나 '사회보장 유사중복사업 폐지안'은 지역의 살림살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지방정부 행정업무의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조치이다. 그럼에도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이러한 정책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타협하고 절충해서 해결점을 찾겠다는 태도가 아닌 것이다. 나는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단면이자, 지방자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권한에는 차이가 있다. 국방이나 환경, 경제, 기초소득보장, 인권 등을 총괄하는 중앙정부는 명백히 전체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의 삶에 막대한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여 년 전만 해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업무를 지역에서 수행하는 하위 행정조직이었다. 사실상 하나의 정부(하부)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그 안에서 중앙정부와 그 '일선 사무소'로서 지방정부 간 상하관계는 명백했다. 중앙정부의 의사결정은 지방정부에 하달되고, 하달된 명령을 받들어 실행하는 것이 지방정부의 몫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법적, 제도적으로 지방자치를 지향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정부이고,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며, 지역주민들을 위해 복무하는 독자 정부이다. 중앙정부의 수장이 국민들의 선택을 통해 선출되는 것과 똑같이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도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통해 선출된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수장을 선출하는 주체는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지방정부를 선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역주민들이 해당지역 자치단체장이 제시하는 정책비전과 공약을 지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정책실행을 과도하게 간섭하려 드는 것은 지역주민의 민의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의 어떤 지역에서 살고 있고,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또한 지역의 주민이다. 우리가 선출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모두 국민이자 주민인 우리로부터 분할된 통치권한을 부여 받았다. 주민으로부터 통치권한을 위임 받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하급기관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는 명백한 이유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앞으로도 여러 사안에서 충돌하고 갈등할 것이다. 국민생활의 향상을 위해 때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분업하는 것이 중앙과 지방정부 간 관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갈등하고 충돌할 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협의해야만 한다.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부산 시민의 지지도가 70%를 넘는다. 우리는 이미 지방자치의 시대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