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한 청년이 시계를 본다. 드디어 퇴근 시간.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멘다. 잿빛 도로에 출근 차량들이 지나가며 지친 청년의 몸을 휘청 흔든다. 그때 그의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가 흘러나온다. '버리기엔 우리 인생은 길어 미로 속에선 날 믿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날마다 새로운 역사 쓰는 BTS
숱한 청춘 공감하고 위로 받아
팬들, 문화 형성하며 큰 영향력
어른들도 BTS 언어 학습할 때
서태지의 '컴백홈'을 들으면서 많은 가출 청소년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십여 년 전의 뉴스를 기억한다. 스타의 선한 영향력이 다시 한 번 발휘되고 있다. BTS 노래에 젊은이들이 공감하며 힘을 얻고, 그들이 주는 위로에 열광하고 있다. BTS가 쓰는 새로운 역사, 한국가수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했던 빌보드 차트 1위, 뉴욕 시티필드 공연, 유엔 연설 등은 이제 새로운 기록들로 덧씌워지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그들의 노래는 '봄날'이라는 곡이었다. 오전 9시 35분에 멈춰진 뮤직비디오 속의 시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순간 나는 순간 멍해졌다. 노래는 날카로운 바늘처럼 마음속으로 아프게 파고 들어왔다.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만나러 갈게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데리러 갈게…' 노래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BTS는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RM,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 7명의 멤버로 구성된 데뷔 5년차 남자 그룹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음악으로 표현한다. 직접 작사와 작곡에 참여해 같은 세대들의 고민을 나누고 그들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잘못한 어제의 나도 나인 거라고, 내일 더 멋질 내가 또 나인 거라고, 좀 부족해도 우리는 너무 아름답다고, 기어가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다독다독 지친 청춘들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포효하듯 소리친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라고 말이다.
그들은 한국말로 노래한다. 전 세계 팬들이 BTS의 노래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고, 노래 속에 숨은 메타포를 찾아 해석하고, 한국의 정서와 사회현상을 공부한다고 한다. 특히 'Love yourself 結(결)' 앨범 타이틀곡인 '아이돌(IDOL)'은 한국적인 색채가 뚜렷하다. 노래 가사에는 얼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 같은 추임새가 등장하고, 꽹과리와 한국의 전통 가락이 흘러나온다. 뮤직비디오에는 개량 한복을 입은 BTS와 달토끼, 부채춤, 한국의 정자가 나오고, 호랑이가 날아다니며 북청사자가 나와 한바탕 신명 춤을 춘다. 아시아 미국 유럽 남미 등 전 세계 팬들이 '떼창'으로 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의 '방탄'은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이다. 10대들과 20대들이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받는 것을 막아내고 당당히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6포 세대를 말하는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이가 어른이 아니라 1990년대생인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이 젊은 가수들만큼 놀라운 것은 그들의 팬덤 '아미'다. '아미는 방탄의 얼굴이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그들은 클린 팬덤문화 캠페인 '방페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의 이름으로 아미가 하는 기부, 헌혈, 영양실조 아동을 위한 식량 지원 등의 활동 역시 BTS만큼 새로운 역사를 쓰며 스타와 똑같은 선한 영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청년들을 열광하게 하는 이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 어른들이 BTS의 언어를 학습해야 할 때가 아닐까.
다시 편의점 청년, 쏟아지는 아침 햇살에 잠시 눈을 찌푸린 청년은 무거운 가방을 고쳐 메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잠과 사투를 벌이던 몸은 아스팔트 속으로 가라앉을 듯 무겁지만 청년은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른다. '가끔 멀리 돌아가도 난 이 순간 행복해. 덩기덕 쿵더러러러 얼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