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테크] 싸이트플래닝

입력 : 2019-03-19 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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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물-사람 연결’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 선보인다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의 한영숙 소장이 부산 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업무 전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사무소는 도시재생이 전문이며,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대표작이다.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의 한영숙 소장이 부산 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업무 전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사무소는 도시재생이 전문이며,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대표작이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도시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함께 형성, 성장, 번영, 쇠퇴의 과정을 거친다. 성장과 번영 단계에 있는 도시 공간은 그 자체로 주목을 받는다. 쉴새 없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반면 세월이 흘러 생명력을 잃은 도시 공간은 소외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공간을 떠나고, 홀로 남은 건축물은 소리 없이 스러진다. 하지만 여기, 모두가 외면하는 쇠퇴의 공간에 천착하는 이들이 있다. 도시를 들여다보며 이해하고, 재생의 숨결을 불어 넣어주면 쇠락의 공간이 지속가능한 삶터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도시재생 전문 컨설팅 업체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가 주인공이다.

도시재생 전문 건축사사무소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대표작

전국 지자체들 러브콜 쇄도

“부산 곳곳 개발시대 프로세스 남아

거주자 의견 철저히 반영해야”

■도시재생에 전국구 해결사

2006년 문을 연 싸이트플래닝은 도시재생에 특화된 부산의 건축사사무소다. 부산 원도심의 풍경과 깊이를 새롭게 만들어낸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싸이트플래닝의 대표작이다. 이제는 부산 원도심의 어엿한 관광명소이자 주민생활 복합공간으로 거듭난 산복도로 이바구공작소, 유치환의 우체통, 장기려의 더나눔센터, 금수현의 음악살롱, 황순원의 서재 등은 모두 싸이트플래닝의 마스터플랜에서 탄생한 곳이다. 부산시에서 발주한 행복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여러 차례 참여하기도 했다.

싸이트플래닝의 활동은 부산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창원시와 함께 전국 최초 도시재생전략계획을 수립한 뒤 다른 지자체들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아 세종, 밀양, 진주, 광양, 남해 등에서 도시재생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에 참여했다. 지자체로부터 인구, 사회, 경제, 환경 등 다방면의 데이터를 제공받아 GIS(지리정보시스템)를 토대로 도시관리방식과 공간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게 싸이트플래닝의 주된 역할이다. 싸이트플래닝의 한영숙 소장은 “도시재생은 사업이 아닌 운동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관에서 계획을 발표하면 건설사가 계획대로 집행하는 개발 시대의 프로세스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며 “공간에 얽힌 사람들과 함께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고, 토론을 거쳐 언제든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소장의 이 같은 철학은 싸이트플래닝의 성장 원동력이다. 이를 토대로 싸이트플래닝은 최근 수도권의 쟁쟁한 경쟁업체들을 물리치고 서울 용산구에서 발주한 용산전자상가 도시재생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상가였지만, 지금은 공실률이 20%대를 넘는 용산전자상가를 젊음과 상상의 공간으로 재생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지역 건축사사무소로는 이례적으로 서울지사를 만들기도 했다.

■공간과 사람 잇는 건축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한 소장은 졸업 후 서울의 한 건축사무소에 입사했다. 민간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리조트나 골프장을 리모델링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이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한 소장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찍어내듯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업무에 한계를 느꼈다”며 “공간과 건축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면서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싸이트플래닝’이라는 이름은 미국의 도시학자 캐빈 린치가 사용한 용어로 ‘일련의 공간에 건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문화적 행위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사전에 계획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마음을 빼앗긴 한 소장은 대학 후배와 함께 싸이트플래닝이라는 작은 건축사사무소를 내게 됐다. 현재는 4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어엿한 중견 건축사사무소로 급성장했다.

전국 단위의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 소장이지만, 삶의 터전인 부산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한 소장은 자성대 고가도로를 지나며 보이는 좌천동 산자락에 빼곡한 주택 풍경을 ‘부산의 얼굴’로 꼽았다. 한 소장은 “누군가가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역동적이고 치열한 공간의 모습”이라며 “이제는 부산에도 조금 더 여유롭고 낭만적인 공간이 더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시 재생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산 곳곳에는 아직도 개발시대의 프로세스가 남아있다는 게 한 소장의 평가다. 한 소장은 “샌프란시스코는 도심 공간에 건축물을 지을 때 2년 간 30번 넘는 시민 토론회를 열고 그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며 “부산에서도 이 공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치열하게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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