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김인수 민들레 공동체 대표

입력 : 2019-06-04 18: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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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함께 섬기며 살겠다는 생각 있으면 누구나 환영”

김인수 민들레 공동체 대표는 “공동체적 삶은 어떤 유용성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각성과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 된다”고 말했다. 김인수 민들레 공동체 대표는 “공동체적 삶은 어떤 유용성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각성과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부산 서면의 한 카페에서 ‘마을 공동체 탐사기’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조현 지음)의 북 콘서트 겸 좌담회가 열렸다. 100여 석의 공간이 꽉 찼다. 이 자리에 이야기 손님으로 초청된 4명의 공동체 대표 중에 김인수(59) 대표가 포함돼 있었다. 김 대표는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둔철산 자락의 ‘민들레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민들레 공동체는 이 책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민들레 공동체를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4가정·미혼 남녀 20명·학생 34명 생활

기독교 전도 일하다 시골집 빌려 개조

농사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동체 형성

소박한 삶·뿌리처럼 깊은 삶·순명한 삶

민들레란 이름에 담긴 세 가지 의미

사회에서 정책이나 돈으로 할 수 없는

치유를 위한 최선의 공간이 ‘공동체’

4월 말이면 240㎞ 국토순례 길 오르고

9월엔 전기·가스·수도 끊고 에너지 자립

중2 학생들은 가을에 해외 오지 체험도

기본적으로 대학 갈 생각 말라 가르쳐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 찾는 게 중요"

녹음이 짙어가는 날 민들레공동체에 도착하니 작업복 차림의 김 대표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공동체 소속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손을 놀리고 있었고 대안학교 학생들은 봄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공동체 조직은 어떻게 되나?

“이곳 전체를 민들레 공동체라 부르고, 그 산하에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대안기술센터, 마을기업인 민들레 베이커리, 민들레 아트센터, 민들레 농장 등이 있다.”

-몇 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나?

“4가정과 미혼 남녀 20여명이 함께 살고 있다. 여기에 민들레학교 학생 34명이 숙식하고 있다. 이 중에는 외국인도 4명 포함돼 있는데, 이들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파견한 자원봉사자들이다.”

-공동체를 조직한 계기는?

“처음부터 공동체를 꾸릴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서부경남 일대 농촌에서 기독교 전도 일을 했는데 수십 명의 학생들이 늘 함께했다. 선교활동을 하다 보니 혼자보다 함께 사는 방식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골집을 빌려 개조하고 농사를 짓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형성됐다. ”

대학(경상대) 때 고신교단의 선교 단체에서 활동한 김 대표는 졸업 후 대학 인근인 진주시 정촌면 화개마을의 빈집을 구입해 농촌 아이들을 상대로 교육을 시작했다. 이후 함양, 거창 등으로 활동 무대를 넓힌 김 대표는 부인 원근숙(58) 씨 등 동역자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에게 유기농법을 가르치고 20여 곳의 교회를 개척했다. 민들레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인 게 1991년의 일이다.

-‘민들레’에 담긴 뜻은 뭔가?

“3가지 의미가 있다. 이파리처럼 소박한 삶, 뿌리처럼 깊은 삶, 홀씨처럼 순명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자격 같은 게 있나?

“기본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난하지만 함께 섬기며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가족회의에서 통과하면 우선 3개월 살아보게 하고, 적응이 되면 1년 더 있게 하고, 3년 동안 잘 적응하면 ‘생활가족’이 된다. 원치 않으면 언제라도 나가면 된다.”

민들레 공동체에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도 받아 보호하며 함께 사는 공동체 정신을 고양하고 있기도 하다.

-공동체의 장점이나 필요성은 뭔가?

“공동체적 삶은 어떤 유용성에 목적을 두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존재에 대한 각성과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내면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치열한 전장터이자 낙원을 경험하는 장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사회에서 정책이나 돈으로 할 수 없는 인간 치유를 위한 최선의 공간이 될 것이다.”

-공동체의 한계도 있지 않을까?

“끊임없는 대화와 고백이 살아 있지 않으면 작은 오해와 불편이 크게 와닿을 수 있다. 공동체는 하나의 세계인데, 그 폭과 깊이와 과거·현재·미래를 통합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

트랙터 운전 학습을 하고 있는 민들레 학교 학생들. 트랙터 운전 학습을 하고 있는 민들레 학교 학생들.

-대안학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민들레학교는 어떤 곳인가?

“비인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이다. 2006년 개학했다.”

-비인가면 학부모들이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렇지 않다.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 인가를 받으면 재정적 지원을 받는 등 다소 편리한 면이 있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교육을 못하게 된다. 진정한 대안교육을 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학비는 얼마나 되나?

“월 60만 원인데, 이 중 25만 원이 학비이고 35만 원이 기숙사비 등 생활비이다. 전국 300여 군데의 대안학교 중에서 가장 싼 편이다. 가정 형편이 정말 어려운 아이들에겐 장학금도 지급한다.”

-이 비용으로 학교가 돌아가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까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공동체와 학교는 분리된 게 아니고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이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학생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학생들.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오전엔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 등 지식교육을 하고 오후엔 노작과 자립 등 실생활에 관련된 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농업, 건축, 목공, 양계, 식품가공 등 우리 삶과 밀접한 교육들이다. 졸업하면 바로 책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경험한 것을 토대로 논문을 써내야 한다. 김 대표는 “머리가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논문이어서 대학생 못잖은 높은 수준을 보인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많다고 들었는데.

“매년 4월 말이면 고3을 제외한 모든 학생과 교사들이 열흘간의 국토순례 길에 오른다. 230~240km가량 걷는 대장정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한계를 극복하면 상당히 성숙해진다. 그리고 9월 에너지자립 주간을 정해 전기와 가스, 수도를 끊고 먹거리조차 차단한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살아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이 외에 매년 가을엔 중2 학생들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에 3개월 ‘해외 이동학습’ 연수를 떠나 오지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고2는 미국 지역사회연구개발소에 3개월간 머물며 제3세계의 삶을 개선하는 적정기술과 창의력 캠프에 참석하고 브루더호프나 아미쉬 등 공동체를 방문하기도 한다.

-주로 어떤 학생들이 이곳에 오나?

“아주 뛰어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보통 아이들이다. 그중 일부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아이도 있다. 일반 학교에 가면 왕따나 신경·정신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대부분 증세가 호전된다. 자연 속에서 서로 격려하고 보살피기 때문이다.”

자연채광 등 건강한 환경의 양계장. 자연채광 등 건강한 환경의 양계장.

-학생들 진로는 어떻게 되나?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가 문젠데, 나는 기본적으로 대학에 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요즘은 대학 가면 망하잖아. 학비는 비싸고 졸업해도 취직은 안 되고 부모에게 의존하고. 여기선 늘 노동을 중시하고 ‘밑바닥’ 생활부터 하라고 가르치므로 굉장히 자립심이 강해진다. 대학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교 13년째인 민들레 학교. 이곳을 졸업한 아이들은 농촌, 건축, 베이커리 등의 분야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진학을 권유하지 않지만 스스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심지어 유학을 떠난 경우도 있다고. 어떤 직업을 택하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게 학교 측의 진단이다.

-당신은 이 생활이 진짜 행복한가?

“행복하다. 공동체에 살면서 온갖 어려운 일을 경험했으나, 이런 일들은 일반 사회서에도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됐다.”

민들레 공동체는 해외 사업도 많이 진행해 오고 있다.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워 농민들을 훈련하고 지역사회 개발과 전기를 보급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용하고 있다. 인도와 히말라야 쪽에 선교를 보내 교회를 개척하고 도서관 건립 등 인프라 구축과 직업훈련을 하고 있기도 하다.

민들레 공동체에선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 사람과 동물이 혼연일체로 어우러져 미처 소외감을 느낄 틈이 없는 듯했다.

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대학? 뭣이 중헌디”

김인수 대표는 대학 무용론자이다. 그는 평소 외부 강연에서 도 늘 세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도시에 있지 말고 농촌에 와라. 흙속에서 살아야 사람이 된다. 둘째, 자식 대학 보내려고 하지 마라. 대학 가봐야 별 볼일 없다. 셋째, 취직 당하지 마라. 교육은 직업에 목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립해서 직업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키운다.(조현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중).

그는 세 아이 중 첫째(33), 셋째(29) 아들을 초등학교만 보냈다. 그래도 두 아들은 스스로 공부해서 자기 삶을 개척했다. 둘째(31) 딸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민들레 공동체가 돕는 히말라야 지역의 대학으로 갔다. 딸은 현재 민들레 학교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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