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차에 가자, 집에 가자.”/“아프니?”/“아프다.”/“어디가 아프니?”/“마음.”
누가 봐도 엄마와 어린 자녀의 대화이다. 아이가 집에 데려다 달라고 엄마에게 조르는 평범한 장면 같지만, 마음이 아프다는 대답에선 왠지 모를 집과 가족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느껴진다.
이 대화는 사람과 오랑우탄과의 대화이다. 1977년생 오랑우탄 ‘찬텍’은 어렸을 적부터 마국의 대학 연구소에서 자라면서, 수화를 배워 사람과 의사소통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너무 덩치가 커진 찬텍은 결국 10살 때 동물원으로 보내졌다. 이 대화는 동물원 이송 뒤 자기를 돌봐준 여성 연구원과 주고받은 수화다. 찬텍의 대답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적 활동과 풍부한 감성이 결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오랑우탄 등 영장류 인간 뇌와 유사
고릴라 ‘코코’ 수화로 의사소통
반려동물 고양이 키우기도
지능 높은 포유류 돌고래 감정 느껴
범고래는 10세 아이 수준 지능 갖춰
파충류·어류 고통 느낀다는 연구도
인간 속 파충류·포유류·영장류
머리 속 생각과 감정의 정확한 작동 원리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다만 동물의 신경세포가 발달해야 사고와 감정이 가능하다는 건 확인됐다. 뇌의 뉴런 같은 신경세포 망이 복잡해지면 그 속에서 생각과 감정이 발생한다는 거다. 그래서 뇌 크기와 구조, 장기간의 동물 행동 연구 등으로 동물의 사고와 감정 능력을 예상해볼 수는 있다.
일단 동물의 인지능력을 짐작하려면 인간의 뇌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파충류에서 포유류를 거쳐 영장류가 된 인간은 뇌 속에도 3단계의 진화 흔적이 남아있다.
머리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파충류의 뇌’는 맥박·체온 조절 등 생존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한다. 실제 파충류의 뇌와 같은 모양이다. ‘포유류의 뇌’는 주로 슬픔과 기쁨 등 감정 조절과 기억 등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한다.
뇌의 가장 바깥 쪽을 차지하는 ‘영장류의 뇌’는 복잡한 사고와 감정 억제 등에 주로 관여한다. 이런 식의 구분은 정교한 건 아니지만, 뇌 기능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덴 큰 무리가 없다.
어쨌든 오랑우탄, 침팬지 등 3단계 뇌를 두루 갖춘 영장류는 구조적으로 지능과 감정 능력에서 인간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인간의 대뇌피질 속 뉴런 수는 160억 개 정도고, 고릴라와 침팬지는 각각 90억, 60억 개 정도이다. 이는 인간의 뇌가 성능이 좀 더 좋다는 뜻일 뿐, 다른 영장류와 구조적인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영장류와 인간의 유사성을 말해주는 사례로, 고릴라 ‘코코(사진)’를 들 수 있다. 1971년생 코코도 연구소에서 1000여 개의 수화를 배웠다. 인간 사이에서 존재론적 고민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사람처럼 반려동물을 한 마리 키웠다. 고양이를 품에 안고 달래고, 밥도 챙겨주고 이름도 지어줬다. 불행히도 고양이가 차 사고로 죽자, 한동안 식음을 전폐했으며 그때 수화로 “고양이, 미안해, 사랑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코코는 어떤 면에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고릴라로 세상을 떠났다.
돌고래와 문어
동물보호단체들은 다른 물고기에 대해선 별말이 없더라도, 수족관 내 돌고래 문제에 대해선 격한 반응을 보인다. 돌고래가 예쁘고 친근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돌고래는 어류가 아닌 지능이 꽤 높은 포유류라는 게 이유다. 당연히 돌고래는 감금 생활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이를 두고 “올챙이를 어항에 키운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며 “하지만 돌고래는 자기가 잡혀서 갇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괴로워한다”고 설명했다.
영장류가 아닌 포유류라도 대뇌피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높은 수준의 지적 활동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단지 영장류보다 대뇌피질이 덜 발달했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인간도 20대가 되어야 대뇌피질이 완성되지만, 대뇌피질이 덜 발달한 초등학생에게 사고 능력이 없다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고래는 영장류만큼이나 대뇌피질도 발달했는데, 돌고래는 8~9세, 범고래는 10세 정도 아이 수준의 지능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탁월한 지적활동은 차치하더라도 모든 포유류는 감정 능력이 뛰어나다. 뇌가 사랑, 후회, 동지애 등 다양한 감정과 욕구를 느끼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포유류의 뇌’에서 감정 활동 즉 희로애락의 반응이 많이 이뤄지는 만큼, 다른 포유류도 기쁘고 슬픈 감정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살장의 돼지나 덫에 갇힌 쥐도 인간만큼이나 죽음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위기의 동료를 구하러 뱀과 싸우는 쥐처럼 다른 포유류의 이타적인 행동도 풍부한 감정이 있어야 설명이 가능하다.
반면 파충류 이하의 동물은 감정이 없고 고통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한때 개구리 해부가 수업 시간에 이뤄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무너지고 있다. 물고기도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가 나오고, 새의 높은 인지 능력도 확인됐다. 뉴칼레도니아까마귀는 침팬지 수준의 도구 사용 능력이 있다. 문어도 독특한 경우인데, 뇌는 비록 작지만 신경세포가 다리 등에 퍼져 있어 수준 높은 지적활동이 가능하다. 레고 블록을 쌓는 등 문제해결 능력도 인정받고, 개만큼 똑똑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수십 년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어떤 동물이든 알고 보니 대체로 인간의 예상보다 더 똑똑하고 감정도 풍부했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인 생물학자 얀 판 호프는 이 책에서 “동물은 각각 감각과 자연사에 적응한 자신만의 정신생활, 지능,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지적 우수성에 대한 편협한 태도로 인간만이 감정을 가진 유일한 종이라고 자만하지 마라”고 충고한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