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기 손주를 등에 업은 할매가 손녀를 맞는다. 목 늘어난 티셔츠와 색 바랜 바지를 입은 아이는 할매 앞에서 연신 재잘댄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두 사람은 푸른 바다 옆 자리한 작은 정자에 나란히 앉아 김밥 한 줄로 주린 배를 채운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마음은 든든한 표정이다. 그러다 할매가 내뱉는 한마디에 손녀의 웃음보가 터진다. “마, 김밥 맛이 이상하지 않나? 다 묵었는데 우짜노….”
■영화 ‘감쪽같은 그녀’ 속 부산 찾기
4일 개봉한 영화 ‘감쪽같은 그녀’는 연신 관객을 웃고 울린다. 웃음 나는 유쾌한 상황과 눈물 나는 가슴 찡한 장면이 함께 나와서다. 나문희와 김수안이 주연으로 나선 영화는 2000년 부산 감천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족 드라마다. 따뜻하고 정겨운 감성이 작품 깊숙이 스며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면 대부분을 부산에서 촬영했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지역 곳곳을 찾는 재미가 쏠쏠할 법하다.
나문희·김수안 주연 4일 개봉
감천마을 배경으로 한 가족 드라마
일흔두 살 할매와 손녀 동거 그려
남구 우암동·송정동 죽도공원 등
부산의 다양한 모습 영화 한가득
정겨운 ‘부산 사투리’ 몰입감 더해
영화는 일흔두 살 말순 할매와 손녀 공주의 기막힌 동거를 그린다. 메가폰을 잡은 허인무 감독은 지난해 5월부터 2개월간 부산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정감 어린 부산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감독은 말순 할머니의 집인 서구 남부민동 한 주택가를 영화의 주요 무대로 삼았다.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르다 보면 확 트인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말순이 동네 친구와 고스톱을 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남구 우암동 주택가에 있는 널따란 평상에서 찍었다. 어디 이뿐일까. 할매가 좌판을 깔고 직접 만든 손수건을 파는 곳은 해운대구 송정동의 죽도공원이다. 덕분에 이 장면에선 말순의 뒤로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수영 팔도시장과 학리항 수산물판매시설, 해운대구 떡볶이집, 남구 용호동의 병원, 금정구 옛 침례병원, 사하구 감정초등학교 등 지역의 다양한 모습이 영화에 가득 담겼다.
■정겨운 부산 사투리 영화에 ‘가득’
캐릭터들의 정겨운 ‘부산 사투리’는 작품의 맛을 더한다. 영화 전반에 깔린 맛깔나는 대사들은 극의 몰입감을 더해 듣는 재미를 높인다. 말순 할머니가 손녀 공주를 보고 “절대 안 이자불 이름이네”라고 말할 때나 “니 누고, 와 여기서 자고 있노?” “니 주디 마냥 찍어 발랐는데 내는 왜 날파리고?” “은가락지입니다 순 은이라카이” 같은 정겨운 사투리를 선보일 땐 스크린 속 인물들과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지난해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김수안의 부산 사투리 연기도 인상적이다. 한껏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진주 엉디가 원숭이 맨키로 쫌 짓무르긴 했지예?” “니가 날 어서 봤다고 컸다 카노” “니는 그걸 꼭 대답해야 아나” 같은 차진 말을 내뱉을 때면 귀여운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나문희와 김수안은 부산 사투리 연기를 위해 촬영 전부터 밤낮으로 대사를 읊으며 ‘맹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들의 부산 촬영 뒷이야기
공주를 졸졸 따라다니는 친구 ‘우람’은 더욱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로 작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말을 안 하면 여자 마음을 내가 우찌 아노”라고 투덜대는 장면이나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공주에게 “아 쫌! 남자도 차이면 아프다”고 말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제작진은 2000년대 부산을 이질감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동네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발품을 팔았다. 지역 골목을 찾아다니며 철저하게 사전 답사를 했다는 후문이다. 인위적인 모습 대신 정감 있는 지역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출연 배우들의 부산 사랑도 남다르다. 나문희는 “촬영이 진행된 부산 집은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과 비슷해 좋았다”며 “장독대 옆 담장 너머로 바다와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옛날 생각이 나서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 시민들의 인심도 넉넉해 즐겁게 촬영했다”고 했다. 김수안 역시 “부산에서 촬영하는 매일이 선물 같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