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파 무방비’ 마린시티, 방파제 대신 차수벽 세운다

입력 : 2020-01-08 19:28:38 수정 : 2020-01-08 20: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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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지인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의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한 시설로 방파제가 아닌 차수벽 설치가 추진된다. 부산일보DB 매립지인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의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한 시설로 방파제가 아닌 차수벽 설치가 추진된다. 부산일보DB

2016년 태풍 차바 피해 이후 월파를 막기 위해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에 추진되던 해상 방파제가 사실상 무산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부산시에 “마린시티 추가 매립을 기본으로 하는 차수벽 설치를 검토하라”는 검토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부산시는 차수벽 설치를 위한 행안부 심의 준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재난 방재를 위해 국내에 차수벽을 설치한 전례가 없어 안전성을 두고 논란이 인다.

4년째 추진해 온 방파제 무산

행안부 ‘기립식 차수벽’ 역제안

부산시, 행안부 심의 준비 착수

평소에는 지면에 눕혀 놨다가

재난 직전 90도로 세우는 형식

‘방재용’ 전례 없어 안전성 논란

행안부와 부산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양측 회의에서 행안부는 시가 기존에 설치를 고수하던 방파제 대신 “차수벽 설치를 검토하라”고 제안했다. 행안부가 제안한 차수벽은 기립식으로, 평소에는 지면에 평행하게 눕혀 놨다가 재난 발생 직전 90도로 세워 파도가 넘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마린시티 앞 영화의거리 호안 앞이 설치 대상 지역이다. 이 차수벽 설치를 위해서는 7m가량 바다를 더 매립해야 한다. 행안부는 기립식 차수벽으로 마린시티 경관 훼손 우려도 덜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 마린시티 매립 당시 매립기본계획에 필요에 따라 7m 추가 매립이 가능하게 돼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방제 시설은 행안부와 부산시가 50%씩 예산을 분담한다.

부산시는 2016년 태풍 차바 피해로 마린시티가 자연재해개선위험지구로 지정된 뒤 행안부와 방파제 설치를 위한 논의를 4년째 이어왔다. 마린시티 앞에 길이 750m 방파제를 설치하는 데 587억 원이 투입될 것으로 시는 예상한다. 이에 행안부는 자연재해개선위험지구 지원 예산으로 방파제를 설치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방파제 설치 예산 지원을 반대해 왔다. 최근 행안부가 ‘역제안’한 기립식 차수벽 건설 예산은 387억 원 안팎으로 200억 원가량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추가 안전성 확보를 위한 설계까지 진행하면 비용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차수벽이 효율적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시는 ‘제2의 차바’ 사태를 막기 위해 방파제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행안부를 설득했지만 더 이상의 설치 지연은 어렵다고 판단해 기립식 차수벽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다음 달까지 기본설계안을 준비해 행안부 중앙사전설계 검토회의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1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중앙사전설계회의에서 기립식 방파제안이 통과되면 실시설계 등을 거쳐 기립식 차수벽 설치가 진행된다. 시가 4년간 추진해 온 방파제 설치는 사실상 무산되는 셈이다.

4년 여의 우여곡절 끝에 유례없는 ‘기립식 차수벽’이 추진되지만, 기립식 차수벽이 방재용으로 설치된 사례가 없어 가장 중요한 안전을 외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인다. 기립식 차수벽은 마산만에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 전례가 있지만 월파 방지 등 방재를 위해 설치된 전례는 없다. 행안부는 “매립기본계획 안에서 방재 시설 설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계획에 얽매여 안전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기립식 차수벽 설치를 강행하는 것은 안전을 등한시한 접근 아니냐는 비판이 인다. 행정적으로 매립기본계획에 따라 방재 조치를 하더라도 과거 마린시티에서 태풍 피해가 컸던 만큼 방파제 등의 대안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방재용으로 설치된 차수벽이 처음인 만큼 실시설계 등에서 철저한 안전성 검증,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아대 이정재 건축공학과 교수는 “월파를 효과적으로 막는 방파제 설치를 우선 순위로 하고 차수벽은 후순위에 두는 게 맞다”며 “기립식 차수벽은 그 실효성이 제대로 검증된 바 없기에 환경성과 구조적인 안전성을 고려한다면 방파제가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행안부와 부산시는 방재시설 설치 절차를 올해 중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부산시가 매립 계획에도 없던 방파제 설치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전문적 근거가 필요한데 ‘부산시 차원에서 ‘방파제가 필요하다’는 것 이외의 논리적 설명이 부족해 일종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며 “부산시 설계 계획이 제출되면 전문가 회의 등을 거쳐 방재시설 설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다음 달 중으로 행안부 중앙사전설계 검토회의에 기립식 차수벽 안을 기본설계를 거쳐 제출할 계획”이라며 “방파제와 비교한 안전성 우려는 시에서도 알고 있고 차후 실시설계 등을 통해 구조적 안전성 확보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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