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나노 세계의 반란-진화는 진행 중

입력 : 2020-02-11 19:09:09 수정 : 2020-03-23 17:23:54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머리카락을 열 개 정도 나란히 놓으면 1mm(1000분의 1m) 정도 되니까, 머리카락 하나의 두께는 다소 차이는 있어도 1만 분의 1m 정도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머리카락에 난 상처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머리카락 하나를 세로로 백 개 정도로 쪼개면, 이제 현미경으로도 간신히 보일 정도의 희미한 크기인 1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가 된다. 더 성능이 좋은 현미경으로 보면 조금은 더 크고 두껍게 보일지는 몰라도, 더 이상 그 안에 난 상처는 들여다 볼 수 없다. 마치 픽셀 수가 정해진 사진을 확대해 보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눈이 분별할 수 있는 픽셀 크기의 한계가 1마이크로미터의 절반인 200만 분의 1m 정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세균이라고 부르는 박테리아가 이 정도의 크기다. 세균이라 하면, 많은 사람은 파스퇴르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세균을 처음으로 직접 관찰한 사람은 17세기 후반 현미경을 발명한 레벤후크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음식이나 몸이 자연발생적으로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균 때문임을 알게 됐다. 세균은 단세포이긴 해도 스스로 양분을 섭취하여 유기물을 만들고 번식까지 가능하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는 포자를 형성하여 미세먼지에 붙어 옮겨 다니다가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다시 번성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무척 강하다.


질병 등장과 치료 과정은 진화의 모습

미시세계 보게 돼 오히려 두려움 커져

지금 하는 일 미래에 부끄럽지 않기를


바이러스는 이와 전혀 다르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훨씬 작아서 아무리 좋은 현미경을 통해도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세균의 수십 분의 일, 즉 1000만 분의 1m 정도다. 100억 분의 1m가 원자의 크기이므로, 수백 개의 원자가 결합된 거대 분자들의 집합체다. 세균이 생물이라면, 바이러스는 사실상 입자에 가깝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아무런 생물학적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다른 생명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한다. 바이러스가 기생하는 과정에서 숙주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것이 감염이다.

공교롭게도 (초)미세먼지도 크기가 이와 비슷하다. 바이러스가 DNA, RNA와 같은 핵산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분자 덩어리라면, (초)미세먼지는 이온 성분과 탄소, 금속의 화합물로 조성만 다를 뿐, 둘 다 호흡기 등 우리의 생체기관에 결합돼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모든 생명체는 세균과 바이러스, (초)미세먼지 등 질병과 감염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으며 새로운 항체의 등장과 면역은 진화의 중요한 동력이 돼 왔다. 심지어 필요를 넘어 과도하게 만들어진 항체(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고 이것을 치료하는 과정까지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모습이다.

이미 거의 일상화된 (초)미세먼지를 넘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새삼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무섭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픈 사람을 두고 두려움에 떨며 신의 저주를 풀어주는 푸닥거리를 하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 컴퓨터 바이러스가 무슨 컴퓨터에 기생하는 진짜 세균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보는 방법을 알아내고, 덕분에 미처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보게 됐다. 그래서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새로운 것을 보게 된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두려움으로 더 작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기청정기가 결과적으로 더 많은 미세먼지를 집 밖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나게 생산되고 버려지는 마스크 때문에, 우리는 더 크고 무서운 재앙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병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을 오른다는 것은, 발밑의 봉우리들을 우습게 보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은 넓고 더 높은 봉우리가 많다는 것을 깨닫기 위함이어야 한다. 오늘 미처 몰랐던 것들을 보게 될 내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진화는 언제나 진행 중이다.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