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역학조사관의 세계

입력 : 2020-03-18 18:19:37 수정 : 2020-03-18 18: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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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최일선 ‘감염병과의 사투’… CCTV에 GPS까지 추적
김은영 논설위원

아시아드요양병원 코호트 격리 당시 119 구급대원들이 부산시 역학조사관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들은(맨 아래) 뒤 부산의료원으로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하고(맨 위), 10개 구군 보건소에서 차출한 간호사들은 단체로 검체 채취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부산시 감염병관리지원단 손현진 부단장 제공 아시아드요양병원 코호트 격리 당시 119 구급대원들이 부산시 역학조사관으로부터 주의사항을 들은(맨 아래) 뒤 부산의료원으로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하고(맨 위), 10개 구군 보건소에서 차출한 간호사들은 단체로 검체 채취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부산시 감염병관리지원단 손현진 부단장 제공

부산에서 코로나19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21일이면 한 달이다. 18일 현재 부산시 집계로 102명의 환자가 나오고, 1명이 사망했으며, 1만 5854명의 의심 환자(검사 건수)가 생겼다. 의료진 못지않게 방역 최일선에서 한 달 가까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분초를 다투는 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역학조사관이다. 일반인에겐 ‘코로나19 확진자 이동경로 확인자’ 정도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확진자 진술을 토대로 CCTV와 신용카드 내역을 교차 확인하고, GPS까지 추적해 감염 원인과 경로를 밝히는가 하면 밀접 접촉 여부를 따져 자가격리자를 판단하고, 감염병 발생 장소를 일시 폐쇄하는 등 방역 대책을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산에서 발생한 2건의 동일집단격리, 아시아드요양병원과 해운대나눔과행복병원 ‘코호트 격리’를 잘 마무리한 것도 역학조사관의 역할이 컸다. 부산시 역학조사관 실태와 그들이 들려주는 애환, 그리고 감염병 정책 제언을 들었다. 방역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추가 확진자가 없던 날을 기다려서 인터뷰하고, 추가 취재와 방역 현장으로 나갈 땐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감염 원인·경로 철저히 파악

방역 대책 세우는 역할 해내

‘코호트 격리’ 땐 전쟁터 방불

메르스 사태 이후 5년 전 그대로

방호복 착용 교육 받은 적 없어

역학조사실·센터 필요성 제기


부산시 방역을 책임지는 방역관과 역학조사관들. 사진 왼쪽부터 이미영 팀장, 은영덕 팀장, 손현진 부단장, 안병선 과장, 김동근 팀장, 김은희 주무관.  정종회 기자 jjh@ 부산시 방역을 책임지는 방역관과 역학조사관들. 사진 왼쪽부터 이미영 팀장, 은영덕 팀장, 손현진 부단장, 안병선 과장, 김동근 팀장, 김은희 주무관.  정종회 기자 jjh@

■‘의사’ 역학조사관 있는 부산

바이러스의 지역 전파를 조기에 차단하려면 역학조사가 중요하다. 한 사람의 감염자를 놓치면 그 사람으로 인해 감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국내 ‘31번 환자’ 발생 이후 대구에서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역학조사관 부족이 초동 대처 실패를 불러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권영진 대구시장은 “조사관의 보수 문제 등 (때문에) 모셔 오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들은 대구 신청사를 짓는 데 3000억 원이나 투입하면서 역학조사관 채용에 드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결국은 단체장의 의지가 관건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부산 사정은 어떨까.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전국 17개 광역시·도가 의사 역학조사관과 전문관 역학조사관 채용에 나섰고 2016년 3월 부산이 가장 먼저 완료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는 2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의무적으로 두고, 그중 한 명을 의사로 임명하면 된다.

부산시엔 현재 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가진 정규직 의사 역학조사관(감염병대응팀장) 1명을 비롯해 임기제 사무관, 주무관 등 3명의 역학조사관이 활동 중이다. 직제상 부산시 소속은 아니지만 부산대학병원에서 파견한 부산시 감염병관리지원단이 시청 안에 들어와 있다. 여기서도 베테랑 역학조사관 3명이 지원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아 기장군 공중보건의 1명도 지원받았다. 총 7명의 역학조사관이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의사 역학조사관 정규직 채용은 서울 부산 정도에 불과하다.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레지던트·공중보건의를 마친 뒤 전문의 자격까지 딴 이들이 일반 의사에 비해 연봉도 높지 않고 신분까지 불안정(임기제)하다면 누가 이 자리를 지원하겠는가 싶다. 공중보건의로 대부분 채우고 있다. 공중보건의는 임기제나 다름없어 역학조사관으로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질병관리본부 소속 중앙역학조사관은 올 초만 해도 74명이었는데 16일 기준 83명으로 늘었다.


■검체 채취하러 대구까지

부산시 방역 당국의 기민함은 ‘2번 환자’ 역학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대구에 사는 언니가 부산을 다녀간 뒤 친정 식구들이 잇따라 확진자가 됐다. 가족, 지인 등 2, 3차 감염으로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만약 대구 언니에게서 감염된 게 아니라면 다른 감염 원인을 찾아야 했다. 워낙 많은 환자가 발생한 대구에선 검사 결과를 알려면 3~4일이 필요해 부산시 역학조사관은 연제구 보건소팀을 대구 언니 집으로 파견해 직접 검체 채취를 해서 가져왔다. 하루 만에 나온 결과는 양성. 일단 감염원을 파악했으니 환자 치료에 전념했다.

온천교회 감염원은 오리무중이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여서 역학조사관도 곤혹스럽다고 했다. 풍문으로 떠도는 ‘신천지 추수꾼’을 확인하려면 확진자 전체 명단과 신천지 명단을 대조해야 하는데, 역학조사관이라도 명단을 볼 권한이 없다. 신천지 부산지파에서 시에 제공한 명단은 다른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해서다. 향후에라도 이런 점은 보완돼야 할 것이다.


■코호트 격리, 긴박했던 순간

지난 한 달 동안 시 역학조사관들의 혼을 쏙 빼놓았던 순간은 코호트 격리였다. 특히 아시아드요양병원은 전형적인 요양병원이어서 ‘제2의 대남병원’이 되지 않을까 초긴장했다. 감염병관리지원단 손현진 부단장과 역학조사팀 은영덕 팀장이 확진자 CCTV를 확인하는 순간 아찔했다. 병원 내 확진자 이동경로가 너무나 광범위했다. 그날 밤 신속하게 코호트 격리를 결정하고 환자(193명)와 직원(111명) 등 304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손 부단장은 “하루만 늦었어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증 환자 22명은 부산의료원 1인실로 옮기고, 건강하신 분은 부산인재개발원 임시 생활시설로 따로 모셨다. 그 과정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시 방역관인 안병선 건강정책과장도 현장 역학조사관 판단을 존중해 부산의료원 환자 이송과 10개 구군 보건소 인원 차출 문제를 초고속으로 해결했다. 병원에 남은 환자는 함께 격리된 직원들이 격벽을 치고 환자 간 거리를 넓혀서 돌봤다. 자가격리 된 의료진 공백으로 교대 근무 인원이 모자라 차출된 보건소 직원들이 12시간씩 2교대로 환자 대소변을 받아냈다. 다행히 추가 확진자나 사망자 없이 코호트 격리는 해제됐다. 병원 측에선 고마운 나머지 은영덕 역학조사관 명패를 코호트 병동 앞에 붙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은 팀장은 자기만 고생한 게 아닌데 다른 분들한테 미안하다며 펄쩍 뛰었고, 결국 명패를 떼어 냈다. 감동이었다.

해운대나눔과행복병원 역시 직원들 대처가 명민했다. 의료진(106명)과 확진 환자와 접촉한 입원환자(61명)가 코호트 격리에 들어갔다. 이 병원은 코호트 격리 1주일 전부터 전 직원 마스크 착용을 일상화했다. 심지어 환자들 외부 출입을 막기 위해 편의점 우유 심부름까지 병원 직원이 도맡았다. 그런데 물리치료사와 간호조무사가 외부에서 감염된 것이다. 특히 물리치료사는 환자 1인당 30분씩 물리치료를 진행하기 때문에 2차 감염 위험이 높았다. 부산시가 코호트 격리를 결정한 배경이다. 격리부터 해제까지 모든 책임은 시 김동근 감염대응팀장이 졌다. 현장에선 해운대구 보건소 재반지소에서 파견된 이은주 계장이 20여 년의 간호사 경력을 살려서 헌신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조봉수 해운대구보건소장이나 김 팀장에게 수시로 연락을 취했다. 코호트 격리해제 최종 사인을 하던 날 병원에 들렀더니, 김 팀장과 이 계장, 박선영 간호팀장은 거의 얼싸안고 기뻐했다. 2주간의 코호트가 이들을 너무나 가깝게 만들었다.


■미궁에 빠진 감염 경로

내과 전문의 김 팀장, 예방의학전문의 손 부단장, 감염관리 전문가 은 팀장, 간호사 출신으로 질병관리본부에만 10년 넘게 근무한 이미영 팀장 등 시 역학조사관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했다. 이들 역학조사관의 손에 수백 명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고 생각하니 더 아찔했고 고마웠다.

이런 노고에도 불구하고 미궁으로 남은 감염 경로 찾기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부산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온천교회는 최초 감염자를 모르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기타 확진자도 늘고 있다. ‘천안 줌바 강사 워크숍’처럼 90여 명의 확진자가 나온 사례는 느슨한 역학조사가 확산세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들쭉날쭉 동선 공개에 대한 비판은 새 지침에 맞추고 있다. 인권 침해 요소는 차츰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

역학조사관 인터뷰를 마친 뒤 〈2015 메르스 대응 백서〉(부산광역시 편)를 봤다. 질병관리본부 것보다 부산시 등 지자체에서 발행한 백서가 더 유용했다. 백서가 결론으로 제시한 내용이 현재 상황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게 안타까웠다. 감염병 전담 조직, 신속 대응 체계, 유관기관 대응 체계 네트워크, 의료기관 진료체계 구분, 감염병 매뉴얼 보완, 일원화된 컨트롤 타워, 전문인력 풀 확충과 훈련, 신종감염병 대비 유관기관과의 합동 훈련, 인식의 전환 필요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다.

한 역학조사관이 “감염병 사태 터질 때만 반짝 대책이지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끝나지 않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질병관리본부 조직 확대 못지않게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감염병 대응 조직을 격상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꼭 필요한 보건 인력에 대해서는 개방직(임시직)이 아닌 정규직화 해야 경험이 축적될 것이다. 이 계장이 지적한 “방호복 입는 교육 한 번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가 이번처럼 큰일이 터져서 유튜브로 배워 가며 선별진료소 근무를 하는 후배 간호사를 보니까 미안했다”는 말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구·군 단위 보건소 직원들도 감염병 대응 교육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부산시의 선제 조치로 미래 감염병 대응을 위한 역학조사실이나 역학센터 설립을 검토해도 좋을 듯싶다.key66@busan.com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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