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교육이 사라졌다 대학이 없다

입력 : 2020-10-20 18: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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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코로나19로 바뀌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익숙했던 일상을 탈피하여 뉴노멀을 창조해 가는 것도 있지만, 경쟁의 열풍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갑자기 드러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대학이다. 더 크게 얘기하면 교육이다.

재수생이 유리해졌다고 휴학 열풍이 대학가를 휩쓸고, 교육의 빈부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입시 경쟁은 식지 않는다. 아무리 학령 인구가 줄고 있어도 수도권 대학들의 입시 경쟁률은 여전하다. 새로운 노하우를 터득한 교수들의 동영상 강의가 놀랍게 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대면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고 있다며 학비를 돌려 달라는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면을 고집하는 강의는 불안하다며 수강 취소가 빗발치고, 동영상 강의에만 수강생이 몰린다. 결국 대부분의 학생들은 편하게 학점만 잘 받고 싶은 것이다. 해외 명문 대학의 유명 동영상 강의가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데, 도대체 매 학기마다 수백만 원씩 내고 학교에 등록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로 대학 환경 크게 달라져

경제 논리 앞세운 무한 경쟁 치우쳐

사람 중심주의 회복이 지향점 돼야


동영상 스타 강사들이 뜬다. 별풍선 수입은 어떻게 신고해야 할지도 문제다. 겸직 금지 시비에 공개 강좌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지만, 대학의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되느니, 유명 유튜버가 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존경하는 교수님’의 명강의에서 학생들과 오가던 열띤 토론과 감동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도대체 대학은 어디 있는가.

가뜩이나 학령 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이러한 대학 교육 콘텐츠의 변화는 지방대학의 존립을 벼랑으로 몰고 있다. 애초에 우리 사회에서 과열된 입시 열풍과는 대조적으로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는 크게 조망되지 못했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도, TV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교수님도 결국 그 대학의 지명도를 얼마나 높이는가만 중요하다. 어느 대학을 나와서 어떤 일자리를 얻었는가는 중요하지만, 과연 그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최근 국립대간 학점 교류가 전격적으로 합의됐다고 한다. 서울대에 다니지만 집이 부산인 학생은 코로나 상황 등을 고려하여 부산대에서 강의를 들어도 학점이 그대로 서울대 학점으로 인정된단다. 좋게 보면, 부산대 강의도 전남대 강의도 서울대 강의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합의한 셈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강의야 어찌 됐든 학점만 따면 된다는 얘기다. 이것이 실질적인 국립대 통합, 즉 어느 국립대를 나와도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된다면야 고질적인 입시 교육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일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만 중요할 뿐 굳이 어디서 어떤 강의를 듣던 상관없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어차피 대학 이름만이 중요한 것이라면, 대학 입시로 순위를 매겨 자격증을 주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 아닌가. 대학 본연의 사명이었던 ‘진리탐구’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대학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철저한 경제논리, 즉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에 입각하여 학생들의 취업 준비기관이 되는 것이 그 하나다. 이미 한국의 많은 대학은 대기업이 직접 소유한 사학재단을 필두로 가시적 성과 위주의 무한 경쟁으로 우리나라의 대학 구도를 바꾸고 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와 의대 무패 신화와 같은 전공 계열의 극단적 쏠림 현상도, 현실로 다가온 지방대 공동화와 수도권 초집중화도 모두 이 경제 논리의 결과다. 수도권 고도 비만은 끝도 없는 집값의 상승과 빈부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돈과 권력을 얼마나 가졌는가에 대한 끝없는 줄 세우기와 갑질,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경제 논리를 앞세운 무한 경쟁의 교육에서 승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다.

다른 하나는 대학 본연의 존재 이유를 회복하는 길이다. 본래 대학은 중세의 암흑기를 뚫고 사람 중심주의(휴머니즘)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 낸 문명사의 동력이었다. 사회가 그 어떤 비이성적인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을 때도 인간 본연의 존재 가치와 추구할 바를 지켜 내고 묵묵히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대학이다. 여전히 서구 선진 사회의 대학들은 인간과 사회의 존재 가치를 굳건히 딛고 새로운 미래로의 안내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계절에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노벨상 푸념도 바로 이런 가치에서 크게 빗나가 있음은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모처럼 코로나 덕분에 광란의 무한 경쟁 질주가 멈춰선 지금, 교육이 사라졌다. 대학이 없다. 적어도 교육에서 경쟁은 답이 아니다. 경쟁을 피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경쟁력이다. 사람 중심주의를 회복하는 것이 대학의 새로운 지향점이어야 한다. 사람 중심주의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길을 잃었을 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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