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좋아 서울을 미련 없이 떠났다. 경남 함양 지리산 아래에서 7개월째 '귀 지리산' 생활을 누리고 있는 류정자 작가. 류 작가는 지난 연말 조선 중기 함양군수를 지낸 김종직 선생이 쓴 '유두류록'을 직접 발로 좇은 탐방 안내서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를 썼다. 작가가 활동하는 인터넷 모임 '지리99'에 그동안 쓴 글과 별도로 조사한 글을 모으고 다듬어 냈는데 책 발간과 함께 지리산으로 이사까지 온 셈이다.
인터넷 모임 ‘지리99’에 쓴 글 정리
2004년부터 탐방, 2008년 정착
함양군 ‘김종직 길’ 개설에 힘 보태
류 작가는 최근 함양군이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개설을 준비 중인 '김종직 길'을 여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함양군은 김종직 길 조성을 위해 환경부에 공원계획변경신청을 냈는데 신청안이 통과되면 지리산 천왕봉 등정 1호 기록으로 남은 김종직의 길이 공식적으로 열린다. 군은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올 하반기에 마천면 휴천면 일대와 지리산 비법정탐방로인 노장대~얼음터 4.5km 구간의 등산로 개설을 계획 중이다.
류 작가의 지리산 사랑은 그 연원이 깊고, 특히 유두류록 고증을 위한 수고는 오래됐다. '지리99' 회원들과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리산 탐방을 시작했고, 2008년에는 아예 지리산 자락에 집터를 구했다. 그 터가 현재 류 작가가 깃든 집이다.
지리산으로 이사 온 뒤 된장, 고추장도 담그고 곶감도 깎는 시골 생활이 류 작가는 낯설지 않다고 했다. "고향이 경남 밀양이에요. 시골 생활의 즐거움을 안답니다." 서울에서 이사 왔다길래 그곳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류 작가가 실은 밀양에서 유년을 보내고 부산에서 오래 산 남쪽 사람이었다. 작가의 지리산 사랑도 일찌감치 시작됐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여름 방학에 어찌 친구들과 지리산에 왔는데 온 산을 덮은 원추리 군락에 넋을 잃었죠. 지리산과 사랑에 빠진 적을 말하라면 그때죠" 류 작가는 1980년대 중반 '우리들의 산악회'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등산에 입문했으나 결혼과 육아로 잠시 멈췄다가 여유가 생기자 다시 지리산을 찾았다. 당시 부산에 살 때라 고 성산 선생을 따라 자주 지리산을 찾았단다.
근래 류 작가의 지리산 탐방은 인터넷 모임 '지리99'가 중심이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쉼터인 지리산 아흔아홉골(지리99) 인터넷 홈페이지는 언제라도 지리산이 그리운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가 랜선 탐방도 할 수 있다. "2002년부터 인터넷 모임을 시작했죠. 2010년이 되자 2000명의 회원이 활동했는데 이후 5000명으로 급증했어요." 류 작가는 회원이 갑자기 는 이유가 지리산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있지만 대전통영고속도로 개통 이후라고 나름 분석했다. 예전에는 서울 경기 사람들이 지리산을 오려면 전남 구례나 경남 진주에 와서 다시 차를 갈아타야 했는데, 교통의 발달로 대전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함양이나 산청에 도착하니 수도권 등산 인구의 지리산 유입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류 작가는 "지리산은 아직 비밀과 숨은 보물이 너무 많은데, 규제 위주의 탐방 정책으로 사실상 민간단체의 접근이 봉쇄돼 있다"며 "장차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 언급된 7개 암자를 고증해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류 작가의 지리산 탐방기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는 최근 1쇄가 완판돼 2쇄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다.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지리산 역사에 누구보다 다양한 지식과 탐방 경험이 풍부한 류 작가의 집필실엔 벽면을 가득 채운 지리산 전도가 걸려 있다. "산에 못 가는 날에는 지도를 보며 지리산을 떠올립니다." 류 작가의 지리산 사랑이 원추리꽃처럼 아름답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이재희기자 jae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