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묻다] (상) “아들 죽음으로 몰아넣은 ‘김민수 검사’는 아직도 전국에…”

입력 : 2021-05-24 19:17:36 수정 : 2021-06-01 14: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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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묻다] (상) 죗값 물을 수 없어 타는 가슴


사망 당시 28세였던 김후빈 씨가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미안해”였다. 가족의 휴대전화 사진 속 김 씨는 따뜻한 아들이자, 듬직한 큰형의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다. 김후빈 씨 유족 제공 사망 당시 28세였던 김후빈 씨가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미안해”였다. 가족의 휴대전화 사진 속 김 씨는 따뜻한 아들이자, 듬직한 큰형의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다. 김후빈 씨 유족 제공

엄마는 단돈 420만 원 때문에 30년간 함께했던 소중한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압박으로 아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검찰도 경찰도 이들에게 살인죄를 묻지 못했다. 이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공무원자격사칭과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을 따름이다. “아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김민수 검사’는 아직도 전국에 있습니다.” 지난 7일 전북 순창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은재(55) 씨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세간을 뒤흔들었던 김민수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사기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4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정 씨의 시간은 여전히 아들을 떠나보낸 2020년 1월에 머물러 있다.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시달리다

420만 원에 목숨 끊은 김후빈 씨

아들이자 가장 잃은 어머니

여전히 2020년 1월에 머물러

“일상 산산조각 숨 쉬기 어려워

피싱 사기범 처벌 수위 높여야”


정 씨는 ‘김민수 검사’ 행세를 한 보이스피싱(이하 피싱) 조직의 사기 행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후빈(28) 씨의 어머니다. 김 씨는 2020년 1월 22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피싱 조직 사기에 넘어가 420만 원을 송금하고, 약 11시간 동안 이어진 장시간 협박 전화에 시달렸다. 미리 준비해 둔 법률용어를 들먹이며 가족까지 피해를 주겠다던 ‘가짜 검사’의 현란한 말 솜씨에 심한 압박감을 느낀 김 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어머니 정 씨에게 그는 둘도 없는 따뜻한 아들이었고, 6살 터울인 동생에게 아버지를 대신한 가장이었다. 김 씨는 종자 연구에 관심이 많아 기간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연구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학창시절 개그맨을 꿈꿀 정도로 유쾌했고, 온화한 성격으로 곁에는 친구가 끊이지 않았던 김 씨였다. 활발한 성격으로 ‘디제잉’에 취미를 가지고 기획사에 음원을 보내기도 했다. 대학에서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휠체어를 끌고 4년간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한 미담이 퍼지면서 대학신문에 기사가 난 적도 있었다.

행복한 이들 가족의 일상은 김 씨가 피싱 조직의 먹잇감이 되면서 무참히 깨졌다. 지난해 1월 22일 오후 3시 30분. 복지관에서 근무 중이던 정 씨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경찰의 전화였다. 그 시간은 아들 김 씨가 매일 정 씨에게 전화를 걸어 ‘피곤하진 않냐’ 등의 안부를 묻던 시각이라 충격은 더 컸다. 병원으로 옮겨진 김 씨는 당일 끝내 숨을 거뒀다. 김 씨의 휴대전화에 속에서 유서와 녹취파일이 발견되면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10시간이 넘는 녹취파일은 “금융 범죄에 연루됐다”며 송금을 강요하는 피싱 조직원과 울먹이는 김 씨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피싱 조직원은 배터리 부족으로 통화가 끊어졌다는 이유로 순진한 김 씨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해 강제 수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개수배를 내리겠다는 터무니없는 협박까지 이어졌다. 피싱 조직의 치밀한 압박에 속아 넘어간 김 씨는 가족에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하며 ‘저는 억울한 피해자입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 씨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가족은 한동안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동생은 사고의 충격 속에도 큰 형의 빈 자리를 메우려 노력했다. 정 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일상이 산산조각났다”며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작은아들은 우울증과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고 울먹였다.

검찰 수사 결과,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해 김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은 중국 칭다오 소재의 피싱 조직원이었다. 이들은 국내 피해자로부터 착취한 돈으로 현지에서 유흥업소를 오가며 호화생활을 누렸다. 이들은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외국에서 전화를 걸어도 국내에서 전화를 건 것처럼 전화번호가 노출되도록 조작하는 ‘변작 중계기’까지 설치했고, 피해자를 압박하기 위해 각종 법률용어를 달달 외워가며 범행을 저질러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정 씨 가족의 악몽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날의 비극을 잊고 싶어도 ‘피싱 사기’가 하루가 멀다하고 아직도 전국적으로 쏟아지는 탓이다. 김 씨를 숨지게 한 피싱 일당은 부산경찰청의 수사 끝에 부산지법의 재판정에 세울 수 있게 됐지만, 가족은 여전히 가슴을 친다. 미미한 형량 때문이다. 정 씨는 “피싱 사기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돈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목숨일 수도 있다”며 “사람을 죽게 하고 사회적 불안감만을 낳는 피싱 사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처벌 수위를 꼭 높여야 한다”고 애원했다.

순창=곽진석·변은샘 기자 kwak@busan.com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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