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유재석도 놀란 부산 초대형 동굴? 1200평 '광안동 지하벙커'

입력 : 2021-07-09 16:47:33 수정 : 2021-08-04 14: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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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스터리 수사대 '날라-Lee'.

<부산일보> 독자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날라'주는 '이' 기자입니다.

갈고 닦은 취재 기술로 도심 속 미스터리를 파헤칩니다. 문득 '저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주저 말고 제보해주십시오. 동네 어르신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작은 제보가 거대한 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산 동굴의 끝은 어디일까요. 이번엔 초대형 지하벙커 2탄입니다. 수영구 광안동 금련산 자락에 거대한 입구가 뚫려 있다고 합니다. 규모로 치면 대한민국 최대라는 물만골 지하벙커(busan.com 6월 25일 자 '부산 황령산에 1300평 초대형 동굴이?!…물만골 벙커'편 참고)와 견줄 수 있다는데….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산 아시아영화학교와 수영구도서관 사잇길을 오르자 오른쪽으로 굽어진 길이 보입니다. 길 양쪽에는 색 바랜 시멘트벽이 가파르게 섰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벽은 높아졌습니다.

길 끝에 다다른 곳은 철문으로 굳게 닫힌 지하벙커 입구. 대형차가 오가는 터널처럼 보입니다. '으아'하는 기합과 함께 철문을 들어 올려봤으나, 꿈쩍도 안 합니다. 기합 소리 메아리만 벙커 안에서 맴돌 뿐입니다.

다행히 부산시, 부산영상위원회 도움으로 이날 내부 탐방이 가능했습니다. 진입이 가능한 '진짜 입구'는 거대 철문이 아닌 바로 옆 기계실(?) 같은 방에 있었습니다.

방 안의 작은 문으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곡괭이로 마구 부순 광산처럼 좁은 굴이 30~40m 이어졌습니다.

길 끝의 문을 열고 나가자, 우리가 찾던 '거대 지하벙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견고하게 마감된 천장과 벽, 광활한 통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 여태껏 보지 못한 '요즘 시대 벙커'였습니다. 앞서 탐방했던 1300평 물만골 지하벙커가 '구축'이라면, 광안동 지하벙커는 '신축' 느낌입니다.

내부 구조는 단조롭습니다. 길게 뻗은 중앙 통로 양쪽으로 깊숙한 방들이 나 있습니다.



방들은 아치형 구조로 전고가 높습니다. 크고 작은 방이 여럿 있는데 최대 40~50평 정도 돼 보입니다. 총 개수는 22개. 큰 방 14개, 작은 방 8개입니다. 방공호처럼 출입문이나 내부 칸막이 없이 뻥 뚫려 있습니다. 한 작은 방에는 6000V가 적힌 오래된 배터리가 여러 개 놓였습니다.

중앙 통로 끝은 또 다른 모습입니다. 처음 들어온 동굴처럼 옛 바위가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초대형 환풍기도 비스듬히 중앙에 놓였습니다. 그 앞에는 작은 구덩이에 빗물이 고였습니다.

취재 결과 광안동 지하벙커의 공식 명칭은 '충무시설'. 원래 일제강점기 시절 광산이었던 것을 확대·개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건립 시기는 1972년. 전쟁에 대비해 부산시, 경찰, 53사단 등이 입주해 지휘본부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서울 함락 등 최악의 경우에는 청와대, 군 수뇌부도 사용한다고.

규모는 1115평입니다. 중앙 통로 길이는 270m, 폭은 최대 4.5m입니다. 준공 당시 전기·통신시설을 갖췄고, 강성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져 웬만한 폭탄에도 끄떡없다고 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 도움으로 10년 전인 2011년 때 충무시설 모습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거대한 출입문에는 국방 무늬가 입혀졌고, 바닥은 왕복 2차로 선이 그였습니다. 내부 천장 조명도 켜졌습니다. 부산영상위원회 관계자는 “방마다 나무로 된 문들이 달렸고, '경찰서장실' 같은 문패도 있었다”고 합니다.

부산 충무시설은 1997년까지 매년 을지훈련 때 지휘본부로 사용됐습니다. 이후 1999년 새로 이전한 부산시청 안에 충무시설이 조성되면서 사용이 중단됐습니다.

지금은 부산영상위원회를 통해 영화, 예능, 뮤직비디오, 넷플릭스 드라마 등 촬영 장소로 자주 쓰입니다. 영화 <감기>, <부산>을 비롯해 드라마 <더킹 투하츠>, <완벽한 스파이> 등 모두 29개 작품을 촬영했습니다.

2016년에는 인기 예능 MBC 무한도전 공개수배편에 등장해 충무시설 존재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당시 충무시설에서 차량을 획득해 빠져나오던 유재석은 "인디아나 존스가 된 것 같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이곳은 2012년, 건립 40년 만에 '부산 미디어아트 벙커'로 조성이 추진됐습니다. 독특한 시설물답게 문화와 예술을 접목한 미디어소극장, 전시실, 사무실로 기획됐습니다. 2단계 사업으로 빛 연출 실험, 레이저쇼 등의 아이디어도 제시됐다고.

그러나 이후 흐지부지됐습니다. 예상보다 소방·제연 설비 구축 등 소요 예산이 커 사업이 중단된 것입니다.

부산 충무시설은 규모나 형태, 위치로 봤을 때 미래 자산으로서 가치가 커 보입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단조로운 구조로 내부 이동이 용이합니다. 인근 물만골 지하벙커처럼 지역의 근현대사를 담은 역사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관심 속에 부산의 콘텐츠를 보여줄 새로운 공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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