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학생처장 "너도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입력 : 2021-07-10 11: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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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부산일보 DB 서울대학교. 부산일보 DB

서울대 측이 최근 사망한 청소노동자에 대해 이른바 '갑질'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서울대 학생처장이 SNS에 분노의 반박을 쏟아냈다가 삭제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구민교 학생처장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소노동자 사망사건과 관련한 장문의 글을 올렸다.

구 처장은 "우선 지난달 26일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에서 일을 하시다가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이 모 선생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59세의 젊은 나이셨는데 안타깝다. 세명의 자제분들 중 막내는 아직 고등학생이라 더욱 그렇다"고 적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 역겹다"며 "언론에 마구잡이로 유통·소비되고 있는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분노했다.

구 처장은 "고인은 16여 명의 서울대 관악사 소속 청소노동자분들 중 가장 우수하고 성실한 분들 중 한 분이셨다고 한다"며 "생전 문제의 그 업무필기 시험에서도 1등을 하셨고, '드레스 코드' 조치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지난달 1일 부임한 관악사 안전관리 팀장 등이 청소노동자들에게 갑질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요 갑질 사례로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문으로 쓰게 하는 등 시험을 진행하고 점수를 공개해 모욕감을 주는가 하면, 남성 청소 노동자는 회의 시 정장을 입고 여성 노동자는 복장을 예쁘고 단정하게 입을 것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겸 학생처장 페이스북 캡처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겸 학생처장 페이스북 캡처

이와 관련, 구 처장은 문제의 필기시험에 대해 "직무교육 과정에서 2차례 이뤄졌는데 일부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있어 더이상 시행하지 않았다"며 "지속적으로 근로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한 갑질 코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드레스 코드에 대해선 "3시 30분에 시작하는 업무 회의 후 이분들이 바로 퇴근하라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오시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구 처장은 "다들 눈에 뭐가 쓰이면 세상이 다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만 보인다지만, 정말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자괴감이 든다"며 "언론과 정치권과 노조의 눈치만 봐야 한다는 사실에 서울대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 유족 분들의 뜻은 이 일이 엉뚱하게 커지지 않는 것이었다고 믿는다"며 "여러 관계자분들과 같이 조문을 가 진심으로 조의를 표했고, 유족분들도 저희 뜻을 받아주셨다고 믿는다. 유족 모두 순수하고 겸손한 분들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노조가 개입하면서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다"며 "억지로라도 산재 인정을 받아내기 위해 학교의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중간 관리자의 갑질' 프레임에 좌표가 찍혔다"고 주장했다.


7일 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은 고인이 근무하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 앞에 붙은 추모 글. 연합뉴스 7일 서울대학교에서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은 고인이 근무하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 앞에 붙은 추모 글. 연합뉴스

그는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라며 노조 측 주장에 일일이 반박했다.

구 처장은 먼저 노동자들이 100리터 용량의 쓰레기 봉투를 매일 6~7개씩 처리해야 했다는 주장에 대해 "해당 기속사동 실제 청소결과 평일 기준 100리터 봉투 2개 이내로 발생했다"고 말했다.

회의에서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거나 볼펜과 메모지를 지참하지 않으면 모욕을 주고 인사평가에서 감점하겠다고 경고했다는 것에 대해선 "청소원이 회의 후 바로 퇴근할 수 있도록 작업복 대신 퇴근복을 입으라는 의미였다"며 "관리팀장의 카카오톡(지시)에 대해 고인도 감사를 표하며 답신했다"고 전했다.

또 "퇴근 복장으로 참석한 청소원에 대한 칭찬은 있었지만 복장을 갖추지 않은 사람에 대한 모욕주기는 없었다"며 "준비물을 구비하지 않은 것에 농담조로 '감점' 언급은 있었으나 안전관리팀장이 인사권과 평가권한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다.

구 처장은 특히 필기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공개해 모욕감과 스트레스를 유발했다는 것에 대해 "본인이 속한 부서명, 정확한 근무, 휴게시간, 취업규칙 내용, 동료 근로자의 이름, 관악사의 정식 명칭 등의 숙지를 위한 직무교육의 일부였다"며 "시험 결과는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내용도 아니며 강제된 것이 아니어서 채점 후 개인에 배부되었고, 1~3위에 해당하는 청소원을 격려했을 뿐 다른 청소원들은 서로의 결과를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청소 노동자가 본 시험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청소 노동자가 본 시험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관악사의 명칭을 한자나 영어로 쓰도록 한 것에 대해선 "관악사에 1300여명의 외국인 학생이 상주한다"며 "처음 찾은 외국인들이 현재 자기가 있는 곳이 관악학생생활관이 맞는지 메모 또는 휴대전화 메시지로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정확한 응대를 하지 못해 당혹감이나 창피를 느꼈다는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리팀장 입장에서는 현장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관악학생생활관의 영어, 한자 명칭만큼은 알 수 있도록 직무교육에 포함시켰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구 처장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청소노동자 사망사건을 두고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며 울분을 토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분 얘기를 다룬 기사를 제 손으로 옮기긴 싫지만 저도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와 한 마디 하겠다"고 작심발언을 쏟아낸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 또한 어떤 분들께는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지금 너무 일방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기에 최소한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해달라. 필요하면 법원 등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 처장의 글은 이후 삭제된 듯 10일 현재는 확인할 수 없는 상태지만,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캡처된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누리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구 처장의 페이스북 최근 게시물에는 "사람이 죽었는데 피해자 코스프레?" "언론과 노조 따위 눈치 보게 되어 자존심 상한다는 수준으로만 느껴진다" "갑질을 당연히 여기며 서울대가 한 짓에 대해 전혀 창피나 잘못은 느끼지 못하는 글 잘 봤다" 등 비난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유가족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26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이 모(59) 씨는 대학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파열이었다. 노조에 따르면 이 씨는 사망 당일 오전 11시 48분께 딸과 통화했으나 이후 연락이 두절됐고, 같은 날 밤 10시께 배우자가 경찰에 신고한 후 11시께 숨진 채 발견됐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씨에 대해 "지난달 1일 부임한 관악학생생활관 안전관리 팀장 등 서울대학교 측의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 힘든 노동 강도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남편 A 씨는 기자회견에서 "아내는 젊은 시절 언론사에서 16년간 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세네갈에서 15년간 비영리단체(NGO)에 몸을 담았다가 지난 2017년 귀국했다"며 "2019년 11월부터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로 근무했다. 걱정 없이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저희 부부는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배달음식을 주로 먹어 쓰레기양이 매우 많아졌다"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학교 측에서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군대식으로 관리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박문순 노조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은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가 (고인의 사망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유족과 함께 산업재해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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