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공간 읽기] 공간·지형에 순응하자 신비로움과 설렘이 찾아왔다

입력 : 2021-08-11 16:57:47 수정 : 2021-08-17 13: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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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연화리 카페 ‘공지’

카페 공지는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남동쪽으로 큰 도로에 접해 있으면서 북서쪽으로는 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와 인접해 있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는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남동쪽으로 큰 도로에 접해 있으면서 북서쪽으로는 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와 인접해 있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의 뒷마당. 하지만 카페 지하 1층에서 이 뒷마당은 마치 앞마당처럼 느껴진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의 뒷마당. 하지만 카페 지하 1층에서 이 뒷마당은 마치 앞마당처럼 느껴진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3m가량의 높이차가 있는 대지는 평지보다는 건물을 올리기에 상당히 난해하다. 터(집이나 건물을 지을 자리)를 평탄하게 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일종의 순응이다. 카페 ‘공지’(Gong' G, 부산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는 본래 있는 대지를 그대로 활용했다. 공지(空地)라는 이름도 ‘공간을 비운다’는 의미. 카페 공지는 이름처럼 대지에 대한 순응을 표방한다. 대신 여기에 사람과 자연, 맛있는 커피를 채워 넣겠단다.


3m가량 높이 차 있는 대지 그대로 활용

비일상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공간 연출

카페 들어서면 개방감, 신전에 온 느낌

마운틴 뷰 자랑, 넓은 마당선 자연 만끽

공간·동선 의도적 배열로 호기심 자극

곳곳에 ‘캔틸레버’… 마치 떠 있는 듯


■ 하이엔드(High-End)는 음악에만 있나

카페 공지는 올해 7월 문을 열었다. 최근 연화리에서 핫한 공간 중 하나가 된 공지는 삼각형 모양의 대지면적 987㎡에 지상 2층, 지하 1층의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다. 건축면적은 191㎡, 연면적은 396㎡에 달한다. 설계는 이종민(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건축사가, 조경과 내부 인테리어디자인은 위드하임(대표 박창술)이 맡았다. 카페는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남동쪽으로 큰 도로에 접해 있으면서 북서쪽으로는 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와 인접해 있다. 바다 풍경과 제법 떨어져 있어,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변을 살피면 바다와 산을 함께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있다. 얼핏 푸르름 속에 둥지를 튼 모습이랄까.

건축물 설계 결과는 ‘현재’가 얘기한다. 카페 공지를 찾는 고객의 발길은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이만하면, 결과는 일단 만족스럽다. 하지만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도로보다 낮고 주변 언덕에 의해 둘러싸인 부지를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앞면에 주차장을 없애고 카페 건물을 바싹 당겨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공간과 지형에 충실하기로 했다. 핵심은 지하 활용에 있었다. 이종민 건축사는 삼면은 벽으로 막히고, 한 면은 트인 지하 공간과 이미 만들어진 자연 언덕이 만들어 줄 의외의 공간을 생각했다. 질주하는 차 소리에서 벗어나 나와 초록빛만이 존재하는 공간, 일컬어 ‘적요(Silence)의 공간’. 그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듯한 그런 공간이 그려졌다. 평소 ‘공간은 일상적이지 않아야 하며, 예측 불가능해야 한다’라는 이 건축사의 건축관이 투영됐다. 마치 내 집 뒷마당처럼 초록의 넓은 잔디 정원을 가진 카페 공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카페 공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음악으로 치면 남이 흉내 내지 못하는 최고의 품질을 추구한다. 요컨대 하이엔드(High-End)다. 이 건축사는 “이걸 건축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건물 외벽 ‘Gong' G’라는 산뜻한 글씨체의 알파벳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커피잔, 가림막, 카페 입구 신발 털이 매트에도 Gong' G 혹은 G가 눈에 띈다. 이것도 수제안경 디자인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오또 김길수 디자이너가 했다.

카페에 들어서면 확 트인 공간감과 개방감에 마치 신전이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열주처럼 8개의 원기둥이 줄지어 나란히 서 있으니 그 느낌은 배가된다. 왜 이렇게 1층 층고(6m)가 높을까? 중층 느낌의 2층은 루프톱과 1층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 넓지 않다. 이 때문에 건물 동쪽 5평 남짓의 2층 공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카페 1층은 2층이 없는 형태다. 이 건축사는 “연면적에서 어렴풋이 느꼈겠지만, 층수는 많지 않아도, 건축 공간은 꽤 넓은 편이다”고 설명했다.

카페 공지 1층 모습. 카페에 들어서면 확 트인 공간감과 개방감에 마치 신전이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열주처럼 8개의 원기둥이 줄지어 나란히 서 있으니 그 느낌은 배가된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1층 모습. 카페에 들어서면 확 트인 공간감과 개방감에 마치 신전이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열주처럼 8개의 원기둥이 줄지어 나란히 서 있으니 그 느낌은 배가된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1층 입구 쪽 모습.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1층 입구 쪽 모습.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 공간의 의도적 분할·배치, 신비감·호기심 자극

흔히 “바다 풍경에 취한다”는 말을 한다. 기장 해안 길을 따라 이어지는 카페 중 상당수는 기암괴석과 함께 바다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일단 바다를 품고 있다는 것은 카페로서는 큰 장점이다. 하지만 카페 공지는 앞쪽으로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중간에 마을이 있어 바다 풍경이 큰 장점이 되지 못한다. 바다를 보러 나온 사람들에게 바다 풍경을 완전히 만끽할 수 없다면 이는 단점이다. 하지만 카페 공지는 이런 단점을 장점으로 바꾼 경우다.

이 건축사는 바다 조망 대신 마운틴뷰 쪽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공간을 의도적으로 분할했다. 카페 1층, 중층(2층), 지하층, 루프톱, 앞마당, 뒷마당 모두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공간은 단순하고 심플하면서도 재료 사용 또한 현란하지도 않다. 그러나 “무엇을 하는 공간이지?” “저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끊임없이 유발한다. 이건 배치·배열의 효과다. 특히 원기둥의 배열은 이를 극대화한다. 사각과 원기둥의 느낌은 다르다. 그만큼 인상적이다. 호기심을 따라 이들 공간에 들어서면 공간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다가온다.

요컨대 카페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창을 통해 뒷마당을 곁눈질하듯 바라보며 지하 계단을 빨려가듯 내딛게 된다. 색다른 공간이 나타날 것 같은 설렘을 안고 말이다. 여기에 부응하듯 지하 1층은 지상 1층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둥을 감싸 안은 듯한 지하 1층의 테이블 배치도 이색적이다. 카페 뒷마당이 지하 1층에선 앞마당이 된다.

같은 마당이라도 앞마당과 뒷마당의 분위기는 완전 다르다. 앞마당이 담장과 배롱나무를 통해 산만한 바다 풍경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면, 뒷마당은 자연을 느끼고 맘껏 접하게 한다. 위드하임 탁미경 프레지던트는 “정원보다는 내 집 마당처럼 자연을 즐기고 만질 수 있게 뒷마당을 꾸몄다”고 했다. 뒷마당에는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계수나무를 비롯해 그라스, 달맞이꽃 등 계절마다 꽃피는 수종을 골고루 심었다.

카페 공지는 벽이나 층위(level, 層位)에 의해 사용자의 시선을 일정 부분 차단한다. 이 건축사는 “이는 다음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곧바로 풍경이 반전돼 극대감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고 말했다. 앞마당 담장 높이가 성인 어깨 정도가 아니라 성인 키를 훌쩍 넘기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하지만 조금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카페 공지 1층과 지하 1층 사이 계단 옆에 위치한 화장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1층과 지하 1층 사이 계단 옆에 위치한 화장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지하 1층. 벽에 기대어 바깥을 바라보면 마치 내 집 앞마당처럼 느껴진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지하 1층. 벽에 기대어 바깥을 바라보면 마치 내 집 앞마당처럼 느껴진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지하 1층.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공지 지하 1층.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앞마당은 담장과 배롱나무를 통해 산만한 바다 풍경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카페 앞마당은 담장과 배롱나무를 통해 산만한 바다 풍경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제공

■ 곳곳에 떠 있는 공간 ‘캔틸레버’의 연출

작은 공간에서도 동선은 중요하다. 뻔한 동선은 공간에 대한 신비감을 없앤다. 카페 공지에서 동선은 단순하지 않다. 이리저리 흩트려 놓았다. 방문객을 직진하게 하지 않고 살짝 돌아서 오게 한다. 이는 더 깊은 공간감과 신비감으로 작용한다. 궁극에는 여기에 자리 잡고 앉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중층(2층)은 잠시 머무는 공간이지만, 풍경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래로 내려다보며 카페 공간을 파악하고, 마치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캔틸레버(cantilever, 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아니한 상태)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루프톱에 이른다.

루프톱에선 산과 골프장, 바다가 펼쳐지는 의외의 풍경과 마주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직 앉을 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았다. 건축주는 “올가을쯤에는 루프톱에 올라가 커피 한잔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했다. 해 질 녘 루프톱에서 바라본 경치는 카페 공지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다. 이건 분명 덤이다.

캔틸레버 계단은 중층과 루프탑을 연결하지만 루프탑 쪽에만 고정돼 있고, 중층과는 분리돼 있다. 마치 떠 있는 느낌이랄까. 이처럼 한쪽 끝은 고정돼 있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아니한 캔틸레버는 이 건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곳곳에 숨겨진 듯 있다. 뒷마당에서 건물을 보면 왼쪽이 떠 있는 느낌, 바로 캔틸레버를 만난다. 이 건축사는 “이런 스타일을 건축주가 너무 좋아해 구현했다”고 귀띔했다.

공지 마당은 온통 초록의 향연이다. 이소연, 한순자, 정광호, 김청정 같은 작가들의 미술 작품도 카페 곳곳에서 청량감을 더한다.

카페 2층(중층) 공간. 계단을 통해 루프톱으로 갈 수 있다. 캔틸레버 계단은 중층과 루프톱을 연결하지만 루프톱 쪽에만 고정돼 있고, 중층과는 분리돼 있다. 마치 떠 있는 느낌이랄까. 정달식 선임기자 카페 2층(중층) 공간. 계단을 통해 루프톱으로 갈 수 있다. 캔틸레버 계단은 중층과 루프톱을 연결하지만 루프톱 쪽에만 고정돼 있고, 중층과는 분리돼 있다. 마치 떠 있는 느낌이랄까. 정달식 선임기자
카페 공지의 루프톱 풍경. 이곳에서는 산과 골프장, 바다가 펼쳐지는 의외의 풍경과 마주한다. 건축주는 “올가을쯤에는 루프톱에 올라가 커피 한잔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정달식 선임기자 카페 공지의 루프톱 풍경. 이곳에서는 산과 골프장, 바다가 펼쳐지는 의외의 풍경과 마주한다. 건축주는 “올가을쯤에는 루프톱에 올라가 커피 한잔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정달식 선임기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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