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초고압 송전탑으로 고통 받은 부산 기장군 주민들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2012년 소송을 제기한 지 9년여 만이다. 원전으로 인한 부산 시민들의 직·간접적 피해가 줄을 잇는 상황 속에 송전탑 피해 보상에 대한 중요한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12일 한전이 김철성 상곡마을 kV대책위원장 등 부산 기장군 상곡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제기한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1·2심 재판부인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이 김 위원장 등에게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로 세대당 300만 원을 한전이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2015년 3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6년 5개월 만에 내려졌다.
대법원, 한전 제기한 상고 기각
‘세대당 300만 원 지급’ 원심 유지
2012년 소송 제기 9년 만에 결론
마을 근처에 신고리원전 송전선
사업설명회 없이 설치되자 소송
대책위 “전자파 등 피해 심각
한전, 생활 불편 해소책 내놔야”
김 위원장과 상곡마을 주민들은 2010년 4월 한전이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전에서 경남 창녕까지 북경남송전선로 철탑 설치 구역에 포함된 상곡마을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설명회를 진행하지 않고 철탑 설치를 강행하려 하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부산일보 2013년 4월 18일 자 4면 보도 등). 김 위원장은 “한전이 1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뒤로 765㎸에 이르는 초고압 송전탑을 설치하며 주민들의 의견조차 듣지 않은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항의했다.
상곡마을 인근에는 총 5개의 765㎸ 송전탑이 설치돼 있다. 송전탑은 아파트 40층 높이(132m)에 달하며,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송전탑은 불과 212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재판부는 “한전이 송전선로 주변 마을 주민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환경상 이익의 침해를 최소화할 의견 제출 기회를 박탈해, 상당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의 판결은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공법인이 절차상 위법의 시정으로도 주민들에게 정신적 고통이 남아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정신적 손해의 배상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송전탑 등 국가 시설 설치 절차상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심에서 상곡마을 주민들의 변호를 맡은 정회석 변호사는 “이번 소송 결과는 송전선로뿐만 아니라 모든 행정기관의 처분이나 사업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을 경우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정 변호사는 “조용하던 산골 마을 위로 고전압 송전탑을 설치하면서 환경영향평가나 주민설명회도 없이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법원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다행이다”고 밝혔다.
상곡마을 주민들도 대법원이 주민들의 호소를 받아들인 데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이 6년 넘게 걸린 것에 대한 피로감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한전 본사와 정부청사 등을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토로한 지 9년여 만에 최종 승소 결과를 받게 돼 기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 위원장은 “기나긴 소송 기간 동안 송전탑으로 인한 공진음과 전자파, 송전탑에 설치된 섬광등으로 인한 고통은 지금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며 “한전은 상곡마을 주민들의 생활 불편 해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