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커피와 카페 문화, 커피와 일상적 삶이 균형 있게 융합된 특이한 문화를 보여 주는 곳이 바로 21세기의 대한민국이다. 2018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은 커피 수입이 세계 6위였다. 또 성인 1인당 연간 약 353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나 세계 1인당 커피 소비량 132잔의 3배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가히 ‘커피공화국’ ‘커피 대국’이라 할 만하다.
커피 전문가들에게도 한국은 정말 흥미롭고, 활발한 커피 문화를 가진 나라, 그래서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됐을 정도다. 이길상 커피인문학자의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는 커피의 기원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룰 뿐만 아니라 한국 커피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얘기한다.
우리의 커피 역사부터 얘기한다. 조선 사람으로 윤종의(1805~1886)가 최초의 커피 기록을 남겼다. 1848년 썼던 <벽위신편>을 4년 뒤 개정하면서 커피를 소개했다. 이어서 최한기(1803~1879)도 <지구전요>(1857)에서 커피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 커피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한국에 부임한 프랑스 신부 베르뇌 주교
조선에 처음 커피 주문한 것이 1861년”
커피 기원과 흥미로운 이야기 등 담아
한국 커피 문화 과거·현재도 상세 소개
저자는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커피를 즐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역사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며 “커피를 좋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에 부임한 프랑스인 신부 베르뇌 주교가 1860년 홍콩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보낸 서신에 커피를 주문한 기록을 근거로 저자는 베르뇌 주교와 주변의 신자들이 조선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측한다. 베르뇌 주교가 주문한 커피가 조선 땅에 도착한 것이 1861년이었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보면 한국 커피 역사는 160년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커피 광고가 처음으로 신문에 게재된 것은 1896년 9월 15일 자 <독립신문>이었다. 한 독일인이 정동에 문을 연 상점에서 새로 로스팅한 모카커피 원두를 1파운드에 75센트, 자바 커피를 70센트에 판매한다는 광고였다.
국내 생산 커피 제1호는 동서식품의 맥스웰하우스 레귤러 그라운드 커피였다. 첫 발매는 1970년 9월이었고, 곧이어 인스턴트커피도 생산을 시작했다. 동서식품은 1974년에 ‘프리마’라는 이름의 식물성 커피 크림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인스턴트커피, 설탕, 프리마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1회분씩 스틱형 봉지에 포장한 제품을 내놓았다. 이게 맥심(Maxim)이라는 이름이었다.
커피 향을 짙게 해주는 일화도 있다. 비엔나커피 얘기다. 1975년 문을 연 서울 명동의 ‘카페 까뮤’에서 처음 소개한 비엔나커피는 젊은이들이 줄지어 먹을 정도였다. 그 비엔나커피가 원래 명칭이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란 뜻의 아인슈페너로, 마부들이 추운 겨울에 손님을 기다리며 마차 위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 위에 설탕을 넣고 생크림을 듬뿍 올려서 마신 것에서 유래했단다.
한국 거리에 최초로 자판기가 등장한 것은 1978년이었다. 당시 커피 한 잔 가격은 100원이었다. 1983년 말 서울은 ‘다방의 도시’가 됐다. 1980년에 4102개였던 것이, 3년 만에 6855개로 무려 67.1% 증가했다. 다방의 이런 증가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테면 심야 다방은 퇴폐와 윤락 알선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여성 종업원들이 손님으로부터 시간당 출장료를 받고 커피를 배달해 주고 성매매를 하는 티켓다방이 등장해 물의를 빚었다. 1970년대 후반 자판기 커피의 등장에 이어 1980년대 후반에는 캔 커피가, 1999년엔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하며 새 커피 문화를 만들어냈다.
커피는 도시뿐 아니라 농어촌의 생활도 바꾸어 놓았다. 이른바 수백 년 이상을 이어져 왔던 새참 문화가 배달 커피 문화로 대체된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커피를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곳이 ‘강릉’이다. 흔히 강릉을 대한민국 커피 문화의 과거며 현재고 미래라고 한다. 강릉을 전국적 이미지의 커피 도시로 떠오르게 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 열정을 지닌 몇몇 커피 마니아들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책은 제목에서 언급하듯이 ‘조선 가배사’에 앞서 ‘커피 세계사’를 먼저 서술한다. 모카커피 이야기는 흥미롭다. 16세기 후반 세계 커피 무역의 중심이 예멘의 모카항이었기에 모카가 커피 또는 커피 무역의 상징이 되었는데 18세기 자바 커피가 ‘모카’와 같은 달콤한 맛이 나지 않아 초콜릿 등을 가미해 마시면서 이런 류의 커피를 ‘모카커피’로 불렀단다.
더운 여름, 만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즐기는 여유는 선물 같다. 한데 ‘아메리카노’는 2차 대전 당시 군용 커피에 길든 퇴역 군인들로 인해 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단한 직장생활에서 숨을 돌리는 ‘커피 브레이크’는 광고의 산물이란다.
책은 커피 강국에 걸맞게 커피 역사, 커피와 관련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커피 역사책과는 다른 커피사를 만나 볼 수 있다. 이길상 지음/푸른역사/424쪽/2만 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