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올해 7월부터 2년간 임시로 사용하는 서울 도심 민간건물로 청사를 옮기면서 위원장실 인테리어 등 이전 비용으로 33억 7000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기장군 등 원전 소재지 이전 요구를 묵살하고 서울 시내 한복판 사무실을 고집하다 빚어진 전형적인 ‘기관 이기주의’ 행정 사례다. 2년 뒤 임대 계약 만료 전에 타당한 청사 이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부산 영도)이 국정감사 자료로 확보한 ‘원안위 청사 이전계획’에 따르면 원안위는 기존 청사로 사용하던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빌딩 리모델링 계획에 따라 올해 7월 23일 직선거리로 1.4㎞ 떨어진 서울 중구 남대문 롯데손해보험 빌딩에 입주했다.
원전 소재 기장 이전 요구 묵살
기존 사무실서 1.4㎞ 거리 이전
“비상시에 KTX로 신속 이동”
옹색한 논리로 서울 청사 유지
2년 쓸 사무실, 33억 혈세 낭비
임대 만료 2년 뒤 계획도 전무
이를 위해 사무실 공사 등에 14억 5400만 원, 이사비용 등 운영비로 7억 7400만 원, 사무집기 구매 등에 1억 6100만 원, 청사 보증금 9억 7900만 원 등 모두 33억 7000만 원을 지출했다. 원안위 정원 125명(올해 1월 기준)이 1년 동안 사용하는 기본경비(올해 39억 원)에 버금가는 규모의 예산이 임대 기간 2년짜리 청사 이사 비용으로 들어간 셈이다.
재원은 원안위 예산이 아닌 코로나19 등 긴급 재원으로 쓰이는 국가 예비비다. 원안위가 기존 청사 리모델링 계획이 알려진 상황에서 원전 소재지 등 지방으로의 이전 계획을 충실히 만들었다면 지출되지 않았을 ‘혈세’다.
2년 후 새 청사 임대 기간이 끝난 뒤 계획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도 한심하다. 원안위는 “2년 뒤 리모델링이 끝나면 다시 KT 건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지방으로 이전할 수도 있다”며 “현 청사(롯데손보 빌딩)에 더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장기 계획이 필요한 청사 이전을 이렇듯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원전 소재지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야 할 원안위가 무리하게 서울 청사 유지를 고집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원안위는 올해 5월 작성한 청사 이전 검토보고서(안)에서 “서울과 과천 정부청사는 입주 가능한 공간이 없다”면서 “원전 비상 시 또는 인접국 방사능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서울역 인근 지역으로 청사를 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안위가 원전에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KTX를 이용해 신속하게 이동하려고 서울역(중구) 인근에 사무실을 얻는다는 옹색한 논리를 서울 청사 유지 이유로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보 의원은 “원안위 말대로라면 KTX 부산역이 있는 부산으로의 이전도 못 할 이유가 없다”며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의 원전 안전성 제고와 시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원안위는 서울이 아닌 원전 밀집 지역 인근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이어 “국정감사를 통해 중앙정부 차원의 ‘원안위 이전 추진위원회’ 등을 촉구할 방침”이라고 했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