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커피’를 앞세울 수 있는 장점들을 두루 갖춘 도시다. 다른 도시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강점들을 지녔음에도, 지금까지 ‘부산커피’는 그에 걸맞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부산커피’도 ‘부산어묵’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커피가 될 순 없을까. 이를 위해 부산 커피업계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맛있는 커피 제1 원칙으로 드는 ‘신선한 원두’는 부산이 가진 최대 강점이다. 부산은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생두의 95%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도시다. 2일 부산본부세관에 따르면 부산항을 통한 커피 수입은 2013년부터 중량과 금액 모두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0년 부산항으로 수입된 커피는 총 17만 6647t, 7억 3778만 4000달러였고, 올해 7월까지 10만 9470t, 5억 253만 4000달러로 나타나 올해 수입량은 지난해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부산은 커피 원두의 첫 기착지이자 한국 커피 소비의 출발점인 셈이다. 커피 산업계에서도 최근 이 점에 주목하며 시선이 부산으로 향하고 있다.
생두 95% 수입 신선한 원두 강점
바다 건축 결합한 카페문화 확산
페스티벌·세미나 등 연구 활발
부산시도 ‘산업 육성 계획’ 발표
■바다+건축…진화하는 부산커피
부산커피가 최근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다를 끼고 있어 바다를 조망하는 대형 카페가 속속 들어서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전포카페거리를 형성하며 작은 카페 중심의 커피 문화도 여전히 존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기장, 영도 같은 부산 외곽으로 커피 문화가 확산되는 추세다.
특히 기장군 일광, 칠암 등 바닷가 마을을 중심으로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건축가와 협업해 만든 대형 카페가 하나둘씩 들어서 새로운 부산커피 문화가 탄생했다.
대표적으로 부산 이흥용 과자점의 이흥용 대표는 올 여름 기장군 칠암리에 ‘칠암사계’라는 대형 카페를 개점했다. 고성호 건축가가 칠암에서 느끼는 사계절을 콘셉트로 건물을 설계했다. 칠암사계 이흥용 대표는 “커피와 제과를 결합하는 고민을 6년 전부터 해왔고 칠암사계 개점에 앞서서 커피업체와 연계해 ‘블랙 스톤’이라는 칠암사계만의 커피와 이에 맞는 베이커리를 개발했다”면서 “칠암이라는 지역성에 맞는 커피와 제과를 계속해서 선보이는 것이 우리 목표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장에는 칠암사계뿐만 아니라 바닷가를 따라가며 건축과 결합한 카페가 속속 생겨 새로운 부산 커피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영도 역시 새로운 커피 문화의 중심지다. 한국 최초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 전주연 바리스타를 탄생시킨 모모스커피는 본점을 금정구에서 영도구 '창고군'으로 옮기기 위한 마무리 작업중이다. 규모도 더 커졌다. 바다, 대형화, 건축이 결합돼 부산만의 독특한 커피 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에 오면 ‘진짜 커피’를 알게 된다
커피 페스티벌과 커피 세미나, 커피문화 강좌 등 ‘부산커피’의 저력과 매력을 보여주는 행사들도 많아지고 있다. 올해 2회째를 맞는 영도커피페스티벌은 이달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영도구 봉래동 물양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2019년 첫 회 때 에티오피아 대사가 직접 와 축사를 하고 에티오피아식 커피 추출 시연이 열리기도 했는데, 올해는 체급을 더 키워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전주연 바리스타도 영도에서 펼쳐진 ‘르봉커피세미나’를 비롯한 각종 커피세미나와 강연에 나서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출판된 커피 전문서적을 부산도서관에 모으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지난 5년여간 부산 커피 역사 연구에 천착해온 이성훈 부산학당 대표의 커피문화 강좌도 백년어서원과 부산시민도서관, 금정도서관 등에서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부산시도 부산을 커피물류의 거점, 커피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본격 시동을 걸었다. 올 7월 부산시는 ‘부산시 커피산업육성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부산을 ‘커피 소비시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커피 산업 주무대’로 본격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부산시는 4년간 180억 원을 투입해 커피 산업 전반을 지원하는 ‘글로벌 커피 허브센터’를 만들겠다고 했고, 커피 팩토리존, 커피 스트리트 조성, 커피도시 브랜딩과 커피 관광코스 개발 등에 대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부산커피 1세대인, 가비방과 마리포사를 이끈 정동웅 가미레스토랑 대표는 “부산커피만큼은 일회용컵에 담지 않는 커피가 됐으면 좋겠고 이게 부산커피의 상징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생산업, 커피향처럼 퍼져나간다
커피 찌꺼기인 ‘커피박(粕)’을 자원화하는 사업도 커지고 있다. 소외계층의 자활을 돕고 있는 부산 남구지역자활센터가 만든 ‘커피공방 청정구역’은 올 8월부터 커피박을 재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커피박으로 파벽돌도 만들고 화분도 만들고 연필도 만들어 판다. 커피박 환전소에서는 커피박을 가져오면 이를 포인트처럼 사용해 커피박 제품이나 커피점토를 구입할 수도 있다.
남구지역자활센터 최재영 센터장은 “최근 국민연금공단 부산지사와 코레일 부산경남본부로부터 주문을 받아 커피 화분 키트를 만들었고 1000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면서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몇 개월이 되지 않았는데도 부산뿐 아니라 경남에서도 벤치마킹을 위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커피박 재활용 제품에 대한 인식을 넓혀나가고, 이에 더해 커피 비료, 고양이 배변용 펠릿, 난방용 연료 등을 만들기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남구자활센터를 시작으로, 사회적 기업에서도 커피박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끝-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