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부산 의료의 중심축을 담당해 온 부산진구 ‘인제대 부산백병원’이 동부산권 이전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백병원 재단 측이 최근 부산시에 해운대백병원 인근 시유지 매입 의사를 밝히는 등 해운대구 이전 의지를 보이면서 ‘지역 균등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설립 취지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29일 인제대 부산백병원(이하 부산백병원) 등에 따르면 해운대백병원과 재단법인 백병원 측이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백병원 인근 시유지 매매를 요청하는 공문을 최근 부산시에 발송했다. 해운대백병원 증축을 목적으로 인근 시유지를 사들이려는 것이다. 배경은 부산진구 개금동 부산백병원 이전이 핵심이다. 해운대백병원을 증축한 뒤 부산백병원 진료 시설과 의료진을 해운대백병원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위치상 서부산과 중부산에 인접해 부산 중심권 의료 수요를 떠맡던 3차 의료기관의 핵심 진료 시설이 동부산권으로 이전하게 된다는 뜻이다. 재단법인 측은 향후 부산백병원을 대형 종합병원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운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백병원 인근 시유지 매입
증축 후 부산백병원 옮길 계획
부산시에 부지 매매 요청 공문
현 개금동 병원은 요양병원 운영
지역 균등 의료서비스 외면 비난
재단법인 백병원 측이 내세우는 병원 이전 명분은 인프라 확충이다.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부산백병원은 시설 확충이 이뤄지지 않아 병상 850여 개 규모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 부산백병원은 환자 수요에 비해 응급실 병상이 부족하고 주차난이 심각한 등 시설난 해결이 묵은 숙제로 꼽혀 왔다
앞서 부산백병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 확장을 계획했으나, 인접 초등학교 폐교 추진이라는 일방적이고 무리한 방법을 구상해 질타를 받기도 했다. 8월 부산백병원은 병원 확장을 위해 인근 주민들에게서 서명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주원초등 통폐합에 앞장섰다. 그러나 주원초등은 부산시교육청의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였으며, 통폐합 추진 과정에서도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은 배제됐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부산백병원 확장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무리한 확장 방안 추진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부산백병원이 선택한 출구가 ‘해운대구 이전’인 셈이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부산백병원 측이 ‘지역 균등 의료서비스’라는 설립 취지를 저버린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1977년 정부는 지방 의료 제고 차원에서 민간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하며, 의료기관에 전폭적인 행정·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개금동 일원은 인구밀도가 높은 반면 의료시설이 부족한 의료취약지였던 데다 사상공단이 인접해 의료수요가 높은 곳이었다. 백병원 측이 나서자 정부는 재단법인에 시설비 75억 원과 장비 15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지원했다. 특히 재단법인 백병원 측은 부산백병원 설립으로 숙원이었던 인제대 의과대학 설립 승인이라는 큰 혜택을 받기도 했다. 지난 40년간 부산백병원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부산시민의 이용으로 명실상부한 부산 최고 의료시설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물밑에서 진행되는 부산백병원의 동부산권 이전 계획은 ‘의료 서비스의 지역 균등화’ 취지를 외면하고 ‘동·서부산 불균형’을 더욱 부추기는 움직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부산시의회 정상채 시의원(부산진구2)은 “부산백병원은 병원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지역 핵심 시설인데 이마저 동부산으로 옮겨가면 경제·문화에 이어 의료 분야에서도 동부산과 서부산 격차가 심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면서 “백병원 측의 일방 추진보다는 동서 불균형과 갈등을 막기 위한 공론화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백병원 측은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의료 인프라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부산백병원 관계자는 “인프라가 열악하다 보니 주민 민원과 인력 유출 문제가 심각해 병원으로선 위기 상황이다”면서 “해운대구가 부산의 얼굴인 만큼 이전이 현실화된다면 응급진료 구심점 기능을 하며 해운대구와 동반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 반발과 지역 내 의료 격차 심화 등의 우려가 큰 만큼 부산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해운대백병원 측에서 시유지 매입 공문이 온 건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차후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