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부산 사하구에서 발생해 주민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구평동 산사태 사고의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1심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사고 책임을 인정해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고법 민사5부(부장판사 김문관)는 9일 오후 2시 구평동 성토사면 붕괴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방부 측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구평동 산사태 사고의 책임은 국방부 측에 있다는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국방부 측이 제출한 의견서 등을 보더라도 원심이 인정한 책임소재에 대한 판단은 정당하다고 본다”며 밝혔다. 이로써 국방부는 유족과 사고 피해자에게 36억 5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
구평동 산사태 사고는 2019년 10월 사하구 예비군훈련장 일대에서 발생해 주민 4명이 숨지고 인근 기업들이 수십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은 사고다. 사고 당시 부산시 의뢰로 사고 원인 규명을 맡은 대한토목학회 부울경지회는 산사태의 원인을 ‘국방부가 석탄재로 성토한 사면이 수분을 머금으면서 붕괴해 발생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는 “이번 사고 원인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피고가 적극적으로 조성한 성토사면과 배수로 보수하자 때문”이라며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36억 5000만 원 상당을 보상하라”고 판시했다. 자연재해로 인한 국가의 책임 공제는 10%만 인정했다. 정부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2심 판결에서 모두 국방부 측 책임이 인정됐지만 국방부가 여전히 공식 입장과 재발방지대책 등을 내놓지 않자 유족들은 이에 항의하고 있다. 유족 권용태(52) 씨는 “일반업체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업체 측에서 벌써 백번이라도 사과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면서 “사람이 여러 명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맞는 처사인가”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 권용헌(50) 씨도 “죄가 있다면 그곳에 산 죄 밖에 없다”면서 “부모님이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누구에게도 사과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몹시 분하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