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부산 기장 일광 앞바다에 ‘대단지 캠핑장’이 만들어졌다는 것. 코로나 시대, 캠핑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부산에 캠핑장이 또 생겼다는 사실에 맹탐정은 반가웠다. 그러나 이어진 제보 내용에 화가 났다. 노지 캠핑장 성지로 이름난 그곳은 캠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 바다 환경은 물론 지역 주민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는데…. 특히 ‘알박기’ 장박(長泊) 텐트로 많은 사람이 즐기고 공유해야 할 관광 자원을 이기적인 캠핑객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했다. 맹탐정이 직접 그 현장으로 나가봤다.
<현장검증>
'밀폐된 공간'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
‘코시국(코로나 시국)’엔 돌아다니지 말자, ‘집콕’이 최고의 예방이다. 이런 구호들이 무색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캠핑장이다. 기본적으로 야외 활동을 베이스로 한 캠핑은 코로나 시대 유일하게 허락된 취미 생활 같은 느낌이다. 캠핑장은 텐트로 타인과 거리 두기가 가능해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비교적 코로나에 자유로운(?) 장소다. 물론 공동시설을 이용할 때는 마스크를 꼭 껴야 하지만.
맹탐정도 캠핑을 시작했다. ‘장비충’답게 용품부터 사 모았다. 텐트를 사고, 어울리는 의자와 탁자를 샀다. 각종 조리기구와 불멍을 위한 화롯대, ‘갬성’만 있고 눈은 아픈 조명도 필수다. 드디어 떠날 때가 왔다. 그러나 가장 큰 난관에 맞닥뜨렸다. 바로 캠핑장 예약이다. 보통 한 달 전부터 예약을 받았다. 예약이 열리는 날이면,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했다. 위치가 좋고 경관이 좋은 캠핑장은 평일에도 자리 찾기가 어렵다. 몇 번의 예약 실패를 반복하다 ‘누울 자리만 있으면 간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자연스럽게 ‘노지 캠핑’에도 관심이 생겼다. 화장실, 샤워장 등이 갖춰진 캠핑장이 아닌 자연 속에서 조금은 불편하게 지낸다는 것.
사서 하는 고생은 언제나 낭만적이지만, 일광을 다녀온 뒤로 노지 캠핑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아니 접는 게 옳은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부산 노지 캠핑장의 '성지'
부산 시내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기장군 일광면 캠핑장에 도착했다. 좋은 캠핑장은 도심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느 정도란, 도심은 벗어나지만 그렇다고 전화가 터지지 않을 정도로 오지는 아닌 곳. ‘여행을 떠나요’가 콧노래로 나오지만, 오랜 운전으로 지치지 않는 거리를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곳은 적절하다.
노지 캠핑장 정보는 쉽게 공유되지 않는다. 까놓고 말해 소문이 나면 붐비기 때문이다. 알음알음 공유된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노지 캠핑 ‘맛집’이다. 블로그나 캠핑 카페를 통해 쉽게 위치를 알 수 있다.
과연 도착한 곳은 성지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무 덱으로 이뤄진 산책로가 도로를 따라 길게 만들어져 있고, 곳곳에 바다로 통하는 길이 나있다. 내려가니 눈앞에 일광 앞바다가 넓게 펼쳐진다. 파도 소리에 귀가 개운하다 . 400m 정도 이어진 해변은 울퉁불퉁한 갯바위로 평평하지는 않지만, 그 덕에 눈이 지겹지 않다. 바위에 파도가 부서지며 물보라가 구슬처럼 흩어졌다. 절경이다. 캠핑장 바로 지척에 위치한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텐트들
해변을 따라 수많은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대충 수를 세어봐도 50동은 넘어 보인다. 알박기 텐트라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지만, 설마설마했다. 캠핑객을 찾으려 했지만 모두 ‘빈집’이다. 빈집은 털어야 제맛. 설치된 텐트들을 살펴봤다.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지붕은 찢어지고 폴대가 부서진 텐트도 있다. 흡사 귀신의 집, 버려진 움막 같은 느낌이다. 오랫동안 한자리에 알박은 탓이다. ‘저 텐트에서 캠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부서진 텐트들은 오직 자리 잡기 용도로만 쓰인다. 못 쓰는 텐트로 자리를 잡고, 캠핑을 할 때는 새 텐트를 설치한다.
애써 알박은 텐트들이 바람에 날아갈까 수십 개의 로프들이 연결되어 있다. 텐트에 연결된 로프들은 나무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다.
깔끔한 텐트들도 있다. 울퉁불퉁한 바닷가를 평탄화하긴 쉽지 않았는지 창고에서나 쓰일 법한 플라스틱 팔레트를 굳이 가져와 그 위에 텐트를 세웠다.
모래주머니를 텐트 주위에 쌓아올려 견고하게 지었다. 정성에 혀를 내둘렀다. 바닷가 작은 절벽 꼭대기, 딱 한 명이 몸을 누울 만큼 좁은 공간에도 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날이 따뜻해지면 집(?) 나간 캠핑객이 돌아온다. 이런 알박기는 좋은 풍경을 독차지하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갬성 대신 쓰레기로 가득 찬 무법지대
캠핑객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다를 보면 마음이 깨끗해졌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눈 닿는 곳마다 쓰레기가 보인다. 한 곳에 모여있는 것도 아니다. 바위 틈, 바닷가 구석구석 로프, 폴대 등 부서진 캠핑용품이 곳곳에 나뒹군다.
마침 바닥에 그대로 박혀있는 폴대가 보였다. 힘을 줘 빼려 해도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지 빠지지 않았다.
스프레이 캔이 무더기로 버려져 있다. 처음에 다 쓴 부탄가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일종의 방수 스프레이였다. 텐트나 등산복에 뿌리면 얇은 막으로 코팅돼 빗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장박 알박기를 대비해 텐트에 뿌리고 아무 곳에나 던지고 간 흔적이다.
먹다 버린 음식물과 생활 쓰레기 악취가 코가 찔렀다. 치킨, 족발, 떡볶이로 보이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물티슈, 나무젓가락 등 캠핑에 필수적인 물건들이 대다수였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가져 가 달라는 경고판을 비웃듯, 경고판 바로 아래 쓰레기가 작은 언덕을 이루며 쌓여 있다.
단속 권한이 없다? 뒷짐만
장박 알박기 텐트가 ‘대단지’를 이루고, 쓰레기가 산을 만들어도 이곳이 관리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자체에서 알박기 텐트들을 싹 치워버릴 수는 없을까? 사실 이 캠핑장 부지 구성은 다소 복잡하다. 공유수면과 민간 소유 부지가 얽혀있다. 공유수면 영역은 기장군에서 별도로 울타리를 설치해 텐트나 쓰레기 투기를 막아 놓았다.
현장에서 만난 군청 관계자는 “일주일마다 점검 차원으로 둘러보는데 쓰레기를 가져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또 “공공장소의 캠핑은 단속이 가능한데 개인 사유지의 텐트를 단속할 권한이 부족하다"며 "다만 부지 소유자가 무단 침입으로 경찰에 신고는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기장군 어느 곳에든 18시 이후로 야영 및 취사 행위가 불가능하다. 사실상 관할 관청이 뒷짐만 진 사이 자연은 파괴되고 쓰레기 산은 커지고 있을 뿐이다.
땅 주인이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부지 소유자는 속이 탄다. 기장군청에서 날아온 공문 때문이다. 노지 캠핑장 부지 중 사유지 일부를 관리하는 이 모 씨는 “지난해 12월 군청으로부터 쓰레기 청결명령 이행 통지서를 받았다”며 “바다로 출입할 수 있는 통로를 기장군에서 소유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니 그 책임을 땅 주인한테 떠넘긴다”고 억울해 했다.
그는 또 “기간 내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이 같은 사정을 담은 공문을 보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 달라고 군청에 주문했다. 그는 “해당 부지는 자연녹지이자 보존지역이라 사람이 기거하며 관리하기가 힘든 곳”이라며 “공문을 보낸 이후 군청에서 현장을 보고 갔고 아직 답신은 오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사실상 누구 하나 나서서 관리하기 힘든 부지의 성격, 공무원의 안일한 ‘단속 권한’ 타령, 가장 큰 문제인 캠핑객의 비양심이 맞물려 ‘성지’가 탄생한 셈이다.
<사건결말>
누가 치워야 할까?
유치원생도 아는 당연한 질문, 정답은 버린 사람이다. 당연한 문답이 이곳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지 캠핑장 부지를 소유한 법인 관계자는 “강제로 텐트를 철거하게 되면 절도죄 등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며 “인부를 고용해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지만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땅은 침대, 하늘은 지붕 삼아 자연에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캠핑이다. 텐트를 치면서 알박기를 했다고 그 땅이 캠핑객 소유가 되진 않는다.
노지 캠핑장을 떠나려던 찰나, 도로 맞은편 한 사찰 입구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본성이 청정한 사람은 놀다 간 자리도 깨끗하다.’
뼈 때리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언제까지 ‘성숙한 시민의식’에만 기대야 하는지 답답해졌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