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파친코 사랑은 유난한 데가 있다. 지금은 시장 규모가 다소 줄었다지만 한때 ‘파친코 왕국’의 기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파친코는 쇠구슬을 기계장치로 튀겨 구멍에 넣은 뒤 그림의 정해진 짝을 맞추는 도박 기기다. 사행성이 있으나 합법이라서 성인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과 노인들도 흔하게 게임을 즐기는 ‘국민 오락’으로 통한다. 파친코의 중독성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 젊은 부부가 젖먹이를 차 안에 두고 파친코에 열중한 나머지 아기가 사망한 사건, 파친코 중독을 꾸중하는 어머니를 아들이 살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파친코의 황금시대는 1950년대 초반이었다. 패전 후 딱히 오락이나 레저란 게 없던 시절이었다. 1953년, 전국 점포가 3만 8000여 곳, 연간 매출이 20조 엔(약 200조 원)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다. 2007년 말 통계를 보면, 연간 매출 29조 500억 엔(약 400조 원)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파친코 산업도 2017년부터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들이 다른 데서 즐거움을 찾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쇠락은 2019년 당첨 확률을 낮춘 일본 정부의 규제 때문이었다. 그해 점포 수는 9000여 개로 크게 줄었다.
파친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자이니치(在日)’ 즉 재일한국인이다. 1925년 오사카에서 처음 선보인 파친코 기계 자체가 이들의 발명품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일본에 거주하게 된 한국인들은 차별과 억압 때문에 버젓한 직장에 취직할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인이 기피하는 파친코 분야에서 온갖 난관을 헤치고 거대 산업 형성의 주도권을 잡는다. 1990년대 중반까지 파친코 업소의 80%가량이 재일한국인 소유였고, 2000년대 중반에도 6할 이상의 비중을 유지했다.
애플TV+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파친코’가 최근 ‘글로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뉴스다.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 미국으로 생의 터전을 찾아 나선 한 이민자 가족의 눈물겨운 스토리가 펼쳐진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들이 예상치 못한 사업에 뛰어든 영역도 파친코다. 운명을 알 수 없는 도박이라는 점에서 파친코는 자이니치를 넘어 근현대 한국에 대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K콘텐츠가 비극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로까지 확장해 지구촌의 찬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영도는 한국의 이름 모를 변방이 아니라 전 세계가 알아야 하는 역사의 첨단에 서 있는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