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토박이로 남편을 따라 경남 통영에 정착한 김지은(35·가명) 씨. 결혼 3년 만에 아이를 갖는 데 성공했다. 곧 태어날 아기 생각에 한껏 들뜬 것도 잠시. 예정일을 불과 일주일 여 앞둔 지난달 3일,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분만과 조리를 한곳에서 해결하려 다니는 산부인과 산후조리원을 예약했었는데, 갑자기 문을 닫게 됐다는 통보였다.
부랴부랴 수소문에 나섰지만, 인구 13만 명인 도시 통영에 운영 중인 조리원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 도움을 요청해 진주 쪽 산후조리원 2곳을 소개받았다. 평이 좋은 곳은 이미 예약이 찬 상태라 울며 겨자 먹기로 나머지 한 곳을 잡았다.
지난해 ‘분만취약 예정지역’ 지정
10년 새 출생아 3분의 1로 ‘뚝’
‘공공 산후조리원’ 필요성 대두
지은 씨는 “당시 조산기가 있어 되도록 주치의가 있는 곳에서 조리까지 마쳤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면서 “타원 분만은 받지 않는 곳도 많아 여기저기 퇴짜맞고 창원이나 부산까지 간 산모들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통영에 하나뿐인 민간 산후조리원이 경영난으로 폐업 위기에 처하면서 출산을 앞둔 지역 산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안정적인 분만과 산후조리 그리고 예후 관리를 위해 원정에 나서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안심하고 아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자체가 설립, 운영하는 ‘공공 산후조리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5일 통영시에 따르면 관내 산부인과 진료가 가능한 곳은 자모산부인과, 통영중앙병원, 새통영병원, 미래산부인과 등 4곳이다. 이 중 분만과 산후조리가 한 번에 가능한 곳은 자모산부인과 1곳뿐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분만취약 예정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지난달 마지막 남은 자모 산후조리원이 폐업을 공지하면서 산모들 사이에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출산율 감소 여파로 조리원 수요도 덩달아 줄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다. 실제로 통영지역 출생아 수는 최근 10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2년 1551명이던 게 지난해 433명까지 줄었다. 이마저도 관내 출산은 332명에 불과했다.
인건비와 유지관리비 등 고정비 지출을 고려할 때 적자가 불가피한 구조다.
하지만 당장 갈 곳이 없어진 산모들이 발을 구르고, 뒤늦게 소식을 접한 보건소와 상공회의소 등이 거듭 운영 재개를 요청하자 사흘 만에 폐업 방침을 유보했다.
조리원 관계자는 “수년간 누적된 적자로 운영 여부를 고민하던 중 시설 내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더는 어려울 것 같아 부득이 운영 중단을 결정했었다”면서 “일단 할 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겨우 급한 불만 껐을 뿐, 언제든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12월 출산 예정인 또 다른 산모는 “조리원 이야기를 듣고 아예 산부인과를 옮겼다”면서 “제대로 된 산후조리원 하나 없는 곳에서 출산을 장려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원정 출산의 불편을 경험한 산모들은 ‘공공 조리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지자체가 설치, 운영하는 시설이다. 이용료가 민간 시설의 절반 정도로 저렴한 데다, 요양보호사 자격도 엄격해 믿고 맡길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국에서 기초단체가 운영 중인 공공 조리원은 총 16곳이다. 전남이 해남, 강진, 완도, 나주, 순천 5곳으로 가장 많다. 경남에서는 밀양, 울산은 북구에 1곳씩 있다. 부산은 아직 없다. 서울 서대문구와 강원 화천, 경북 상주는 올해 준공한다.
통영시의회 배윤주 의원은 “출산은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권으로 공적인 가치가 충분하다”면서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위해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