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의 역사적 사명

입력 : 2022-04-06 19:03:47 수정 : 2022-04-06 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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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여성가족부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공약이 된 이후 지금까지 줄곧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당선인은 여성가족부가 부처로서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보고 있다. 과거에는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해서 정부가 법제화 등을 통해 역할을 해 왔지만 앞으로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불공정 사례나 범죄적 사안에 대해 더 확실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발언 전체로 놓고 보면 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피력하며 국민 개개인에게 일어난 차별이나 피해에 보다 주목해서 시정하겠다는 취지로도 보인다.

여성가족부는 성역이 아니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정부 부처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능 및 명칭의 변경, 때로는 발전적 해체까지도 주장하며 정부 부처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던 여성계조차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당선인의 발언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고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여성가족부의 필요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중이다. 구조적 성차별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성평등 추진체계가 왜 보다 더 강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긴급 토론회와 성명서, 기자회견, 집회, 지자체 광역 의회의 여가부 폐지 반대 결의안 채택 등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는 당선인 발언

여가부 폐지 반대 논의 다시 불지펴

국제사회 한국 여성인권 갈 길 멀다

여성 권익·인권 상황 검토 우선돼야

인수위 대안, 정책 실패 반복 가능성

성별 갈라치기 선거용 공약 폐기해야


최근에는 UN과 주요 여성인권 국제회의에 영향력이 있는 116개 국제시민사회연합체 및 단체들이 성명서를 통해 윤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한국은 각종 경제사회 지표에서 선진국의 위치에 있지만, 여성인권의 측면에 있어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평가는 새롭지 않다. 여성부가 신설될 즈음인 2001년 7월 발표된 미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는 ‘한국이 전반적으로 지역 내 인권 및 민주주의의 지도국이긴 하지만 인신매매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이 특히 성착취 목적 인신매매의 주요 거래국이자 통과국이라고 지적하며 최하위인 3등급 국가로 분류한 바 있다.

정부조직법에 의하면 여성부는 2001년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남녀차별의 금지·구제 등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되었다. 명칭의 변경과 업무의 확대 및 축소 등 변화가 있었지만 여성부 혹은 여성가족부의 일관된 존재 이유는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여성의 권익증진 등 지위향상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정부가 국제사회의 기준에 발맞추어 한국이라는 민주국가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인권을 드높이고자 행정부처를 통해 노력해 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성가족부가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는 평가는 20년 넘게 정부 조직으로서 여성가족부가 여성의 권익증진 등 지위향상에 얼마나 기여했으며, 그 결과로서 여성의 권익 증진과 지위 향상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윤 당선인은 공약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거듭 천명하고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여성가족부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근거와 대안 제시, 충분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인수위에서 검토하고 있는 대안은 과거 실패한 정책의 반복이거나 터무니없는 몰이해에 근거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폭력 업무의 법무부 이관 검토가 그 예로, 인수위는 ‘n번방’사건으로 알려진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계기로 성착취 피해아동청소년 지원 업무가 왜 법무부에서 여성가족부로 넘어왔는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공약은 ‘젠더갈등’이라고 불리는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여성가족부를 지목함으로써 성별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이 ‘선거용’이라는 의심은 공약 자체를 통해서도 커졌다. 당선인의 10대 공약에서는 여가부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공들여 내놓은 공약집에는 상당 부분을 가족, 돌봄, 안전 의제와 관련한 정책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양성평등의 핵심 중 하나인 성별임금공시제도 도입도 약속했다. 여성가족부가 이러한 정책을 추진해 온 핵심 부서인 만큼, 당선인의 공약집만 놓고 보면 여성가족부 기능의 강화가 더 필요해 보인다. 거기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선거전략으로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높았는데 실제 선거 결과에서 윤 당선인은 여성지지율은 물론 20대 전체 지지율에서도 이재명 전 후보에게 뒤지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여성가족부 폐지’, 이 일곱 글자 공약이야말로 선거를 치르면서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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