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얼마든지 ‘민주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입력 : 2022-04-21 18: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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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벤저민 카터 헷

아돌프 히틀러(가운데)가 1934년 9월 9일 독일 베르체테스가덴에서 열린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 그를 환영하는 주민들에 둘러싸여 웃음을 짓고 있다. 부산일보DB 아돌프 히틀러(가운데)가 1934년 9월 9일 독일 베르체테스가덴에서 열린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 그를 환영하는 주민들에 둘러싸여 웃음을 짓고 있다. 부산일보DB

바이마르 헌법 제1조가 규정했듯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주권은 분명 국민에게서 나왔다.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으며,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를 실행해 유권자의 민의를 보다 충실히 반영했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를 확립한 그 나라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벤저민 카터 헷 교수는 세계적으로 극우 포퓰리즘이 힘을 얻는 지금, 히틀러의 집권 과정을 정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는 ‘현대적인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어떻게 그렇게 민주주의가 급격히 무너졌는지’라는 질문에 답하며 그 복잡한 맥락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붕괴 원인 살펴봐

권력 유지 기성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와

배타적인 음모론·비합리적 문화가 결합

히틀러와 나치라는 최악의 등장 ‘부채질’


의회민주주의제의 바이마르공화국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직전 독일제국을 붕괴시킨 혁명으로 탄생한 나라였다.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는 최악의 패전, 증오 대상이던 강화조약과 세계 질서 등 위태로운 토대에서 시작됐다. 특히 패전 원인을 둘러싼 집단기억 왜곡과 전쟁배상금 등의 전쟁 후유증은 당시 국정에 참여하는 최대 정당이자 민주주의 성향이었던 사회민주당과 민주주의 공화국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후에 찾아온 1920년대 초의 초인플레이션과 히틀러가 일으킨 내란에도 공화국은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관용과 개방성을 보이며 학문·과학·문화·사상 등의 영역에서 잠시 융성한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의회 다수당인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민주주의 성향 정당의 정책에 반발하던 세력들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합법적으로 뒤엎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 대열에는 민주주의자들과 대결한 민족주의자·공산주의자, 대기업, 군대, 농민이 있었다. 더욱이 전쟁배상금과 금본위제의 모습으로 찾아온 국제 질서, 무역과 경제·난민 위기로 찾아온 세계화는 이에 분노하는 이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적대자가 되도록 내몰았다. 국제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주적인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은 점점 쌓여갔다.

특히 사회민주당의 오판은 심각할 정도였다. 도시 노동자가 핵심 지지층이었던 사회민주당은 농민들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농산물 수입을 부추기는 무역협상으로 증오를 부채질했다. 농산물 수입과 무역 협상이 독일 농업을 파산시킨다고 생각한 농민들은 이후 나치를 선택한 가장 열성적인 유권자가 된다.

결국 1930년대 초에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데에는 안정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수 없던 세력, 자신들의 입장이 충분히 대표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세력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에 대해 저자는 ‘히틀러 같은 인물이 통치하는, 야만적이고 무법적인 독재정부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각자의 문제를 가장 쉽고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히틀러와 나치는 선동적 연설을 통해 ‘독일에 산재한 어지러운 문제들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국민에게 심어주며 성장했다. 1928년에 2.6% 득표했던 군소정당 나치는 히틀러가 총리가 되기 직전 해인 1932년 총선에서는 제1당이 되었다. 그렇지만 히틀러가 총리가 되는 데에는 국민의 지지뿐만 아니라 집권 우파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대부분 귀족 출신이었던 집권 우파 정치인들은 히틀러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1933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로 임명한다.

히틀러 정권은 결국 권력을 유지하려던 기성 보수 정치인들의 오판, 오만함과 함께 출범했다. 히틀러는 국회의사당 화재를 빌미로 언론·집회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단번에 없애기 시작했고, 국회의 입법권을 정부에 위임하는 수권법을 통과시키게 해 권력을 거침없이 장악하기 시작한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비극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바이마르 민주주의 붕괴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저자는 ‘배타적인 음모론과 비합리성에 치우치는 문화 속에서, 거대한 반정부 운동이 엘리트들의 복잡한 이기주의와 결합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현대도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미국과 프랑스와 같이 자유민주주의가 굳건해 보였던 나라에서조차 오늘날 극우 민족주의·권위주의 등의 비민주적 가치를 앞세운 후보가 득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공격 중인 러시아의 푸틴 역시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권위주의를 실현했다. 이 책은 민주주의는 민주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아픈 교훈을 전한다. 벤저민 카터 헷 지음/이선주 옮김/눌와/428쪽/1만 98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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