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아프카니스탄 카불. 밴드 아하(A-ha)의 ‘테이크 온 미(Take on me)’에 맞춰 한 소년이 거리를 걷는다. ‘아민’이 거니는 이 거리는 곧 소련군과 반군 게릴라 무자헤딘 세력의 긴 싸움으로 혼란에 빠진다. 1989년 정권을 후원하던 소련군이 철수하자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더욱 참담해진다. 그 와중에 소년의 아버지마저 경찰에 잡혀가자 가족은 희망이 없는 땅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온 아민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다큐 애니메이션 영화다. 그런데 영화는 난민의 험난한 여정을 다루는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아민이라는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인다. 아민은 고향을 떠나 모스크바로 다시 코펜하겐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정착했지만, 여전히 망명과 추방이라는 망령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으며,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데 급급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단지 아프간 난민이자 성소수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큐 애니 ‘나의 집은 어디인가’
아프간 난민 아민의 인터뷰 담아
낯선 땅에 홀로 남겨진 성 소수자
가족 인정 통해 비로소 희망 찾아
오래 전 아민은 가족들과 모스크바에 도착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몇 년을 숨어 있었다. 스웨덴으로 밀입국 할 기회가 생겼지만 이마저도 실패한 가족은 다시 모스크바로 환송되었고, 아민의 큰형은 막내만이라도 번듯하게 살게 하기 위해 전 재산을 들여 아민을 코펜하겐으로 보내는 위험을 감행했다. 그렇게 소년은 시민권을 얻어 어른이 되었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다. 그의 현재는 과거와 가족을 부정한 대가로 얻어낸 가짜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낯선 땅에 홀로 남은 아민은 외로움을 견뎌야 했으며, 자신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연인도 친구도 없었다. 게다가 어떤 충만한 감정이 오더라도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 법이다. 폭력 앞에서 무기력했던 과거,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돕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기억, 같은 동족을 부끄러워했던 마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던 경험은 이제 난민의 삶에서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그를 난민으로 살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소수자를 다루는 여타의 영화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울과 불안이 공존하지만 또 희망이 비추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아민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날 드러난다. 행복한 가족 사이에서 초조해 보이는 아민의 모습이 교차되고, 드디어 아민에게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하는 가족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한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큰형이 아민을 데려다 준다고 나선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그들에게마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 당할까 봐 주눅 들어 있는 그때, 형은 예상을 깨고 게이클럽 앞에 멈춘다. 따듯한 웃음으로 동생을 받아들이는 형. 형의 마중으로 새로운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아민은 지금까지 그를 짓누르고 있던 책임감, 난민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비로소 자유로워 보인다.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감독은 10대 중반 아프간 난민 출신의 아민을 만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듣게 된 친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친구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실제 이름과 지명 등을 변경했으며, 정치·경제적 문제로서의 난민이 아닌, 난민으로 지냈던 친구의 감정과 기억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보여주고 때로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들려준다. 또한 영화는 아민의 경험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한다. 특히 영화 중간중간 실사 푸티지를 제공하는 감독은 아민이 겪었던 일들이 현재에도 자행되고 있는 세계의 문제임을 환기시킨다. 아민은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고백 했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듣지 못한 말들이 많음을 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