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담금 부담 큰데”… 소규모 재개발 현장 ‘조합 동의 종용’ 논란

입력 : 2022-05-09 19:37:29 수정 : 2022-05-10 1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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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연제 동래구 일대 아파트와 고층빌딩 모습. 부산일보DB 사진은 연제 동래구 일대 아파트와 고층빌딩 모습. 부산일보DB

부산지역에 소규모 재개발 광풍이 불면서 입주민에게 조합 설립 동의를 무리하게 종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높은 분담금을 부담하기 어려운 노령층은 조합준비위와 건설사 측의 지속적인 강요에 불안을 호소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입주민 동의만 받으면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소규모 개발은 비동의 입주민을 보호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로정비사업 추진 ‘연산삼익’

형편 탓 동의 거부 노령층 주민

건설사 등 계속된 종용에 불안

준비위 “설명 위해 방문” 해명


9일 연산삼익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설립 추진준비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조합준비위가 처음 만들어져 현재 주민 동의를 받고 있다. 가로주택사업은 면적 1만㎡ 미만의 가로구역에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소규모 아파트를 짓는 사업으로, 80% 이상 주민 동의를 받아야 추진할 수 있다.

1979년 건립된 연산삼익아파트는 모두 305세대로, 입주민 절반 이상이 20~40년 가량 거주한 노령층이다. 가로주택사업을 위해서 2억~3억 원의 분담금이 필요한데, 거액의 분담금을 부담하기 어려운 노령층 입주민들이 조합 설립 동의를 거부하고 있어 주민들 사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설립 동의를 거부한 일부 입주민들에게 무리하게 동의를 종용하는 일이 벌어져 문제가 되고 있다. 입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준비위와 건설사 측은 조합 설립 동의를 권유한다는 명목으로 입주민들의 집을 방문하거나 전화를 돌렸다. 입주민 정 모(54) 씨는 “조합 설립에 동의하지 않으면 나중에 공시지가에 해당하는 금액만 받고 쫓겨날 수 있다는 등의 말로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며 “노인들 중에서는 계속되는 설립 동의 종용에 불안해 집을 내놓거나 이사를 가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에서 재개발조합 설립 동의 관련 종용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영도구 봉산마을의 한 아파트에서도 지역주택조합사업의 조합 설립 동의를 종용하기 위해 조합준비위 측이 일부 입주민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협박 편지를 보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자문을 맡은 변호사회 측은 조합준비위 측의 이 같은 행위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이처럼 소규모 재개발 사업에서 조합 설립 동의 종용 행위가 빈번한 이유는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비해 허술한 제도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나 지역주택조합 등 소규모 재개발 사업은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달리 기본계획수립, 구역지정 등 여러 행정 단계를 생략할 수 있어 일정 규모 이상 주민 동의를 얻기만 하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재개발이 가능하다. 조합에 가입한 뒤 1개월 안에 철회하지 않으면 가입비 등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연산삼익 조합준비위 측은 “비동의 입주민들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 연락을 하고 방문을 한 건 사실이지만 강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건설사 측은 “건설사 직원이 홍보차 입주민들을 방문한 적은 있으나 조합 가입을 종용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동의대 건축학과 신병윤 교수는 “최근 소규모 재개발 붐으로 입주민들 사이에 불안을 조성해 조합 가입을 종용하는 행위가 빈번해지고 있지만 법적 보호장치는 사실상 없다”며 “일부 정비업체와 조합 측이 주도해 입주민을 압박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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