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차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나요?” “나와 취향이 다른 이들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지난 5월 21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이었다. 오는 27일까지는 ‘문화다양성 주간’. 올해는 ‘나답게 그리고 너답게’라는 슬로건으로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 부산과 김해에선
지난 21일 오전 10시 부산 수영구 망미동 장애 예술인 창작공간 ‘온그루’의 커뮤니티룸에 어린이를 포함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부산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주간행사 ‘위(we)하는 마음’의 체험 행사 중 하나인 ‘느슨한 비건 식탁’에 참여한 이들이다.
“이 자리에 혹시 비건인 분 있을까요?” 강의를 맡은 느슨한 베지식탁 김재원 대표의 질문에 모두 고개를 저었다. “비건 베이킹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어요.” “식물성으로 만든 비건 빵은 어떤 맛일지 맛보고 싶었어요.” 비건과 비건 베이킹에 대한 관심이 발길을 이끈 것이다.
“한국 치킨집 수가 맥도날드의 전 세계 매장 수보다 많다는 사실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베이킹에 앞서 짧은 동영상 시청과 비건 라이프에 대한 짧은 강의가 있었다. 본격적인 베이킹 시간. 쌀가루, 버터 대신 현미유, 달걀 대신 레몬즙으로 ‘티그레’를 만들고 미니 구겔호프에 아이싱 올리기를 체험했다. 김 대표의 지도로 정확하게 계량을 하고 체를 치고 거품기로 저었다. 틀에 부어 오븐에 굽자 달콤한 빵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버터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풍미가 깊고 식감이 쫀득쫀득하고 맛있다.
김 대표는 2019년 김해 진영신도시에서 비건 베이커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편견의 벽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건 베이킹이면 맛없겠네요, 이런 거 팔아서 돈 되겠어요?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최근에는 비건은 물론이고 제로웨이스트 실천가, 채식 급식 연구를 위한 영양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김 대표는 코로나 이후로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건 베이킹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오히려 선호도가 높아졌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김해시 내동 김해문화의전당 애두름광장에는 플리마켓이 열렸다. 21일 하루 동안 ‘경남×김해 문화다양성 축제’가 펼쳐진 것. 시민, 소상공인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한 플리마켓에는 열기와 웃음이 넘쳤다. 각 부스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스탬프를 5개 이상 찍으면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어른도 아이도 열심히 참여했다.
“학교도 가야 하잖아, 오른손은 자주 쓰는 손이니 왼손에 그리면 안 될까?” “왜? 손등에 그림 있는 게 어때서?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는 거야?” 셀프 헤나 타투를 체험하는 ‘알록달록’ 부스 앞에서 오간 엄마와 아이의 대화. ‘아차’ 싶은 엄마의 ‘인정’으로 아이는 오른손 손등에 예쁜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다른 나라 사람들 무시하지 마세요’ ‘다름이 인정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요’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입니다’ ‘지구인은 모두 다 위대해요’ ‘모두 같은 사람이니 차별하지 맙시다’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 ‘다(多)름이 좋아’ 부스에 시민들이 직접 적어 내건 메시지들이다. 이 외에도 일곱 가지 색 무지개처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기만의 꽃을 만드는 ‘우리는 무지개’, 차별과 편견의 단어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말모이 체험 부스’, 편견을 힘차게 깨뜨리는 ‘앗~따, 달고나’, 월경주기 팔찌 만들기 부스 등 참가자들은 다양한 ‘다름’을 즐겼다.
■“문화다양성이란 차이를 대하는 태도”
문화다양성이란 뭘까. 유네스코는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을 채택했다. 제1조는 다음과 같다. ‘문화는 시공간에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 다양성은 인류를 구성하는 집단, 사회적 정체성, 독창성을 구현한다. 생태 다양성이 자연에 필요한 것처럼 교류, 혁신, 창조성의 근원으로서 문화다양성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다양성은 인류의 공동 유산이며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혜택으로서 인식하고 확인해야 한다.’
‘침팬지 박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은 생물다양성을 ‘생명의 그물망’에 비유했다. 거미줄이 한두 개씩 끊어지면 거미줄 전체가 점점 약해지는 것처럼 생물 종이 하나씩 없어지면 지구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고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다양성도 개인이나 집단의 창조적 사고의 원천으로서 우리 세계가 다양하고 풍부한 형태로 발전될 수 있도록 해 준다.
소수자는 그야말로 소수에 그칠까? 그렇다면 나는 소수자일까?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소수자는 장애인, 난민, 성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북한이탈주민 등이다. 하지만 나이, 학력, 직업, 재산, 가족 상황, 성별, 취향, 질환 등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언제든지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왼손잡이라면 일상에서 무수한 불편을 겪을 것이고, 비건은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존재로 취급받는다. 비만인이나 탈모인이라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조손가족·성소수자 커플·비혼 출산 가정은 ‘비정상’으로 치부 받는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라우라 비스뵈크 지음)에서는 ‘불충분한 인식과 배려 역시 멸시의 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이곳엔 당신이 있을 자리가 없다’고 알리는 상징적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에서 말한다. “비정상 취급을 받거나 소외된 약자이며 때로는 사회의 ‘루저’인 이들이 환대받을 권리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나는 ‘그들’이 아니고 루저가 아님을 증명하기보다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서로를 환대할 용기가 필요하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