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숨비] 팍팍한 현실 체감하려고…하루에도 150번씩 잠수하는 교육생들

입력 : 2022-05-25 19:18:53 수정 : 2022-07-26 13: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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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숨비] ⑤ 해녀 명맥 잇기

거제시 가조도 진두항 앞바다에서 '예비 해녀'들이 거제해녀아카데미 입문반 교육을 듣고 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거제시 가조도 진두항 앞바다에서 '예비 해녀'들이 거제해녀아카데미 입문반 교육을 듣고 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지난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사등면 가조도 진두항. 바닷속에 들어간 20여 명이 형형색색 ‘테왁’ 옆에 각자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원 모양으로 모인 그들은 순서대로 물속에 머리를 넣고 두 다리를 힘차게 휘저었다. 텀벙텀벙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가 숨이 가빠지자 물 밖으로 나왔다. 산소통도 없이 바다에 들어간 이들은 ‘거제해녀아카데미’ 교육생들. 강사들이 해녀 양성과 체험을 위해 ‘물질’의 기초인 잠수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부산일보〉 취재진도 고무 잠수복을 입은 채 ‘입문반’ 교육생과 함께 바다를 누볐다.


해녀 키우는 거제해녀아카데미

교육생 20여 명 짠물과 씨름 중

“물건 욕심내지 말고 숨 아껴라”

실내 교육선 80대 해녀 충고도

졸업생들 출자 협동조합도 구성

부산·울산도 해녀학교 있어야


해녀아카데미 이론 교육 시간. 최혜선 해녀가 강사로 직접 참여해 ‘해녀의 물건’에 대해 강의를 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해녀아카데미 이론 교육 시간. 최혜선 해녀가 강사로 직접 참여해 ‘해녀의 물건’에 대해 강의를 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 바다에 간 학교

이번 입문반에는 여성 10명과 남성 6명이 교육생으로 참여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도 다양했다. 그들은 오리발을 신은 채 바다로 뛰어드는 법을 배웠고, 테왁을 고리로 긴 띠를 만들어 바다를 가르기도 했다. 바다는 잔잔한 수영장과 달랐다. 지나가는 어선이 파도를 일으키면 짠물이 어김없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조명 없는 바닷속은 한 치 앞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수심 6m에 바닥에 바짝 도달해서야 조개껍데기나 해초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고무 잠수복 덕분에 바닷속 추위는 덜한 편이었다.

해녀아카데미는 안전요원과 강사를 두고 수강생이 바닷속에 적응하는 연습을 계속 시켰다. 동시에 ‘물건(해산물)’을 건지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수강생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실제 초보 해녀들도 얕은 물에서 미역이나 고둥 수확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거제해녀아카데미 구재서 사무국장은 “해녀 양성반에서는 매일 150번 이상 잠수를 반복하게 한다”며 “하루에 3~4시간 물질해도 먹고 산다는 말은 모두에게 해당하진 않는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 물건을 많이 건지기도 어렵고, 손질까지 하자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며 “‘장밋빛 환상’을 깨기 위해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는 해녀의 현실을 가감 없이 알린다”고 덧붙였다.


<부산일보> 취재진도 해남이 되기 위해 수업을 함께 들은 뒤 고무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부산일보> 취재진도 해남이 되기 위해 수업을 함께 들은 뒤 고무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 교실에 나타난 해녀

바다 실습 수업이 오후에 열렸다면 오전에는 실내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전·현직 거제 해녀들이 인근 수협효시공원에 마련된 강의실에 나타나 각종 교육을 맡았다. 예비 해녀들에게 각종 경험을 전달하고 공동체 문화 등을 조언해 주기 위해서다. 18일 오전에는 최혜선(43) 해녀가 ‘해녀의 물건’을 주제로 1교시 강의를 했다. 그는 “해삼을 찾으려면 주변에 해삼 ‘똥’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하며 몸으로 배운 정보를 후배들에게 내줬다. 그는 이어 “해녀와 물질할 때는 다섯 숨비(잠수를 한 번 할 때마다 이동하는 거리) 정도 거리를 띄워 두고 움직여야 한다”며 해녀끼리의 ‘불문율’도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4기 졸업생 하정미 해녀는 “해녀 사회는 능력에 따른 철저한 계급 사회”라고 말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4기 졸업생 하정미 해녀는 “해녀 사회는 능력에 따른 철저한 계급 사회”라고 말했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다음 날, 하정미(41) 해녀는 “물질을 하려면 돈, 시간, 체력이 필수”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줬다. 그는 “첫해에 돈 번다는 생각은 버리고 3년 동안 물질에 집중할 각오가 돼야 한다”고 했다. 최 해녀와 하 해녀는 모두 거제해녀아카데미 졸업생이다. 따뜻한 조언도 있었다. 지난해까지 물질한 현삼강(80) 해녀는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학생들과 함께 물질을 나가고 싶다”며 “절대 물건 욕심내지 말고 항상 숨을 아껴라”고 충고했다.

어업권 등 법적 부분과 ‘조수간만의 차’나 ‘이퀄라이징’ 등에 대한 설명은 구 사무국장이 맡았다. 그는 “어촌계에서 바다에 종패를 뿌리고 해녀가 수확하는 과정은 ‘과수원에서 과일을 재배한 뒤 따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고령 해녀처럼 압력 평형을 맞추는 ‘이퀄라이징’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물질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8살때부터 물질을 시작한 현삼강 해녀는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학생들과 함께 물질을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18살때부터 물질을 시작한 현삼강 해녀는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학생들과 함께 물질을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 공동체 형성한 졸업생

거제지역 어촌계는 해녀아카데미 졸업생에게 마음을 서서히 열고 있다. 일부 선주는 졸업생을 보내 달라는 요청도 한다. 어촌계 진입이 여전히 많이 어렵지만, 신입 해녀가 거의 씨가 마른 부산과 비교하면 선순환되는 구조다. 구 사무국장은 “지난해에도 100여 명이 찾아왔는데 양성반까지 거쳐 물질하는 사람은 8명”이라며 “아카데미 출신 해녀들이 배에 잘 적응해, 서로 의지하며 일을 한다”고 했다.

거제해녀아카데미는 졸업생끼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해녀 해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해녀아카데미 4기 졸업생들이 출자해 만든 협동조합 ‘숨비해물’이 대표적이다. 숨비해물 최신철(40) 기획팀장은 “해녀 문화를 알리고 해산물을 잡는 해녀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기존 해녀들의 공동체 문화에 접근하는 데 해녀아카데미 경력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뜻을 받아들여 거제도 해녀 선단 90%가 숨비해물과 거래 중이다. 그는 “해남으로 활동하지 않아도 숨비해물 또한 해녀들과 상생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거제시 진두항 앞바다. 물살이 적당해 ‘예비 해녀’들이 수업받기 좋은 환경이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거제시 진두항 앞바다. 물살이 적당해 ‘예비 해녀’들이 수업받기 좋은 환경이다. 정수원·정윤혁 PD jyh6873@

■ 학교 없는 부산·울산

2015년 문을 연 거재해녀아카데미에서는 ‘해녀 양성’뿐만 아니라 해녀 역사와 공동체 교육을 통해 ‘해녀 문화유산’을 전승하고 보전하려는 목적이 크다. 거제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신고 해녀는 330여 명. 실제 물질은 80여 명이 하는 걸로 추산한다. 대부분 70~80대라 4~5년 뒤 해녀가 크게 줄 수 있는 상황. 이러한 위기감에 해녀를 양성하는 학교까지 생긴 셈이다. 상황이 비슷한 부산이나 울산 등지에는 아쉽게도 해녀 학교가 없다. 특히 부산은 제주도 출향 해녀가 처음 정착한 곳이라는 역사성도 있지만 2011년 984명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부산 해녀·해남도 784명으로 감소 추세다.

하지만 체험시설이나 학교 건립 등 문화 보전에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 해녀학교는 거제를 포함해 제주도 2곳, 전북 부안군 변산면 등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부산·울산·수도권에서 해녀가 되고 싶거나 체험을 원하면 거제로 ‘유학(?)’을 떠난다. 부산에서 수강하러 온 허민성(34) 씨는 “바다를 좋아해 제2의 직업으로 해남을 해도 좋을지 판단하려고 왔다”며 “부산에서는 해녀 관련 교육 시설이 없어 거제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울주군에서 온 김복희(49) 씨는 해녀인 어머니 뒤를 잇기 위해 거제로 왔다. 그는 “올해 모집 공고가 뜨자마자 지원했다”며 “이곳에서 잘 배워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를 잇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부산 기장군 천대원 신암어촌계장은 “해녀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지원책은 젊은 해녀들을 육성하는 것은 물론 부산 해녀를 알리는 데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끝-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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