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은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김치 등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맛의 편차가 적지 않은 음식이다. 대충 만들기는 쉽지만 제대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부산시청 인근에 보쌈을 그야말로 ‘제대로’ 만드는 식당이 있다. 20년 이상 돼지고기를 다뤄온 음식점이니 수준이 상당히 높은 곳이 아닐 수 없다.
지하철 1, 3호선 연산역 1번, 17번 출구로 나가면 딱 가운데 지점에 자리를 잡은 ‘할매보쌈(대표 이성근)’이 바로 그곳이다.
이 대표가 식당을 시작한 것은 1998년이었다. 슈퍼마켓 유통 사업을 하다 망한 게 계기였다. 그의 어머니는 경북 김천 출신이었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는 보쌈도 잘 만들었다. 김천의 시장에서 장사를 할 정도였다. 이 대표는 식당을 열기 위해 어머니에게서 보쌈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이 대표가 할매보쌈 문을 연 시기는 IMF 경제위기 폭발 직전이었다. 가게를 개업하자마자 경기가 급격히 나빠졌다. 처음에는 하루에 1만 원 어치를 팔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보쌈이 맛있다’는 소문이 조금씩 퍼진 덕분에 문을 닫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나중에는 실력을 인정받아 서울에서 열린 음식박람회에 보쌈 분야 부산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할매보쌈’의 메인 메뉴는 보쌈이다. 여기에 홍어삼합과 족발도 꽤 인기를 얻고 있다. 보쌈은 어머니가 만들던 방식대로 만든다. 가마솥에 된장, 대파, 생강, 통마늘, 양파, 맛술, 통후추, 커피, 한약재를 넣어 끓인다. 물이 끓어 오르면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명주실로 묶은 돼지고기를 넣고 1시간 정도 다시 끓인다. 돼지고기에서 핏물이 나오지 않고 젓가락으로 찔러 부드럽게 들어가면 꺼내 10분 정도 식힌다.
‘할매보쌈’에서 내놓는 삶은 돼지고기의 특징은 잡냄새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대개 고기가 식거나 하루 이틀 지나면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의 돼지고기에서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
이 사장이 쟁반에 담은 삶은 돼지고기를 식탁에 올렸다.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는 느낌을 주었다. 한마디로 담담하고 차분한 맛이었다. 고기를 싸먹는 배추김치는 많이 짜지 않았다. 무김치는 약간 달고 약간 매콤했다.
‘할매보쌈’의 삼합에는 다른 집과 달리 배추김치가 아니라 갓김치가 나온다. 그래야 홍어,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갓김치는 남해에서 재료를 사 와서 직접 담근다. 8개월 정도 삭혀 상에 올린다. 홍어는 목포에서 덜 삭힌 칠레산 홍어를 받아와 집에서 조금 더 삭힌다.
홍어, 돼지고기에 갓김치를 듬뿍 얹어 입에 넣었다. 홍어는 적당히 잘 익어 많이 쏘지는 않는 맛이다. 이 대표의 말처럼 배추김치보다 약간 알싸하고 감칠맛이 좋은 갓김치가 더 잘 어울린다. 톡 쏘는 느낌은 덜 하지만 그것이 홍어와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돼지 족발은 통에 담은 물과 흐르는 물에 넣어 2시간 정도 핏물을 뺀다. 이어 솥단지에 넣어 한 시간 20분 정도 삶는다. 이때 한약재인 정향, 팔각, 통후추, 계피, 희양을 넣는다. 천궁을 넣지 않는다. 너무 맛이 진해 족발 특유의 향미를 해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귀, 황귀 등도 첨가한다. 다 삶은 뒤에는 불을 끄고 식히면서 숙성시킨다.
족발도 보쌈의 삶은 돼지고기처럼 잡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부드럽고 달콤한 향과 맛이 풍부했다. 식은 뒤에도 고기는 퍼석해지거나 딱딱해지지 않았다. 특유의 맛도 변하지 않았다. 족발을 좋아하지 않는 딸과 아내조차 접시가 빌 때까지 손을 놀릴 정도였다.
이 대표는 “코로나19가 유행한 2년여 동안 온갖 고생을 다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맛을 알고 식당을 지켜준 단골손님 덕분이다. 식당에서 한 번 보쌈, 족발을 맛본 손님은 코로나19 때 배달로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의 풀려 점심은 과거 수준으로 돌아갔다. 저녁 모임은 아직 불완전하다. 모든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가 식당에 손님이 북적이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