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경남 밀양시청 앞. 한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 국회의원을 규탄하고 있었다. 이들은 “최근 6·1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국회의원 지역구에서 ‘밀실공천’, ‘공천뇌물’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 진상규명을 위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또 “지난 총선 이후 이번 지방선거가 가까워질수록 국회의원과 그 친동생, 밀양시 등 4개 시·군 측근 시장·군수, 기초·광역의원 출마예상자들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면서 “이른바 ‘자기사람 심기’로 현직 단체장 전략 공천, 기초·광역의원 공천뇌물 의혹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남만 보더라도 이번 지선에서 국민의힘 후보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창녕, 의령, 하동, 산청, 거제 등지에서 끊이질 않았다. 창녕의 경우 표면적으로 보기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현직 초선 군수를 경선에 참여조차 하지 못하게 배제해 버렸다. 이에 반발한 당사자는 재심 요청에 이어 단식농성,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행했다. 자연히 지역 민심이 요동칠 수 밖에 없었다.
의령은 국힘의 공천 혼선으로 후보가 공석인 채로 군수 선거가 진행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군수 후보가 성 추문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효력 정지 결정이 법원으로부터 내려졌기 때문이다. 하동은 지역 국회의원이 특정 후보 지지를 종용하는 통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선거기간 동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같은 공천 잡음은 일일이 다 나열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을 지역구 국회의원이 좌지우지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고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왕에 국힘이 여당이 됐으니 유권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했을 뿐인 데다, 기회 있을 때마다 ‘지선 공천 쇄신책’을 내놓아 다른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잡음도 잡음이지만 문제는 민심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후보가 낙점된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백 번 양보해서 충성도나 공천 헌금 액수에 따라 공천을 했다 치더라도 지역주민들의 눈높이에 어느 정도는 근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도 역시나로 끝나버린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이번 지선 후보를 내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춘다’며 몇 가지 공천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살인, 강도, 방화 등 강력 범죄와 성범죄, 음주운전, 고액상습탈세자 등의 배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려 40% 이상의 낙점자들이 이런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는 한 언론사의 자료가 놀랍기만 하다. 그 기준을 제대로 적용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생업에 종사하다보면 사소한 전과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천 원칙은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다. 최소한 그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최후방어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정당들도 크게 다를 바 없긴 하지만, 국힘 역시 스스로 정해 놓은 최소한의 기준을 스스로 저버린 셈이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납득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지난 정부 때 국힘은 내로남불을 염불처럼 되뇌었다. 정권을 되찾은 지 아직 석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 여당이 된 국힘부터 먼저 반지성주의를 극복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백남경 기자 nkbac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