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산 수영구를 들썩이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달 초 ‘당근마켓’에 ‘길 잃은 백구를 목격했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목격담은 여기저기서 올라왔죠. 수영팔도시장, 수영사적공원, 비콘그라운드, APEC나루공원, 온천천 등. 녀석은 여러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목격담에 따르면 백구는 사람을 향해 공격 행동은 보이지 않는 ‘순둥이’였습니다. 다만, 경계심이 강해서 먼저 다가오지도 않았죠. 사람이 다가가면 눈치를 보다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길 생활이 길어지자 백구는 점점 야위어갔고, 행색도 꼬질꼬질해졌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백구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녀석의 동선을 공유하기 위한 단체 카톡방을 만듭니다. 단톡방의 이름은 ‘꽃길만 걷자 백구’.
이 단톡방에서 백구의 사연도 알려졌습니다. 백구는 수영구에 오기 전 화명생태공원 일대를 떠돌았습니다. 겨우내 떠돌던 백구를 A 씨가 올봄 구조했죠. 백구에게는 A 씨가 지어준 ‘꽃순이’라는 예쁜 이름도 있었습니다. A 씨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백구를 임시 보호하면서 살뜰히 보살폈지만, 산책 도중 놓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단톡방 멤버들은 백구 구조 계획을 세웠습니다. 단톡방 인원은 80명까지 늘었죠. 이들은 최대한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습니다. 먼저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밥 먹는 자리’를 만들어 행동반경을 좁히기로 했죠. 매일 밤낮으로 백구의 동선을 확인했습니다. 백구가 자주 들르는 족발집에 녀석 몫을 미리 계산해 두기도 했죠.
애타는 사람들의 속도 모른 채, 백구의 반경은 계속 넓어졌습니다. 동래구 안락동, 해운대구 재송·반여동에서도 목격담이 들려왔죠. 반경이 넓어지면 위험 요소도 많아집니다. 구조를 서둘러야 했습니다. 멤버들은 십시일반 구조비를 모았고, 세 번에 걸친 구조 시도 끝에 지난달 21일 백구를 안전하게 구조했습니다. 5월 초부터 3주 가까이 이어진 술래잡기가 그제야 끝이 났죠.
백구는 최초 구조자 A 씨가 임시 보호 중입니다. 오래 떠돌았지만 다행히 원래 앓던 심장사상충 외에 다른 질병은 없다고 하네요. 꽃순이는 평생 가족을 기다리면서 씩씩하게 치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단톡방 멤버들은 한동안 ‘술래잡기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백구를 찾느라 골목을 유심히 살피던 게 습관이 돼서 걸을 때마다 두리번거리게 된다고도 했죠. 백구 덕에 모이게 된 단톡방 멤버들은 ‘꽃길만’이란 이름으로 유기동물 쉼터에 봉사활동도 갈 예정이라고 하네요.
이름 모를 떠돌이 개에게 보여준 부산 시민들의 따뜻한 온기에 백구가 걸어갈 길엔 꽃이 가득 필 것만 같습니다. 미약하지만 저도 작은 마음을 보태봅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