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의 지발도네(Zibaldone)] ‘범죄도시2’의 문화정치

입력 : 2022-06-09 18: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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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영화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빠져들었던 한국 영화계의 침체를 극복할 청신호라는 것이 영화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영화관을 떠나서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떠나갔던 관객들이 다시 영화관으로 돌아올 조짐을 보인다는 분석도 있지만, 사실 영화관과 OTT는 경쟁 관계라기보다 상호보완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 영화 관객들은 볼 만한 영화가 있으면 되도록 영화관에 가서 본다는 특징이 있다. 외국처럼 아웃도어 레저가 크게 발달하지 못한 까닭도 한몫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OTT 산업의 라이벌은 영화관이 아니라 아웃도어 레저 산업이다.

‘범죄도시2’의 성공은 몇 가지 요인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악의 대립 구도가 명확한 권선징악의 메시지는 한국 관객들에게 언제나 호소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마동석이 연기한 마석도라는 천하무적의 ‘먼치킨’ 캐릭터는 슈퍼히어로 못지않은 쾌감을 선사한다. 잔인한 액션은 ‘불량 형사들’의 비현실적 순진무구함 덕분에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피가 낭자한 폭력이 난무하지만 그렇게 충격적이거나 무섭지 않다.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외출해서 두 시간 남짓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오락성을 제공한다. 분명 전작에 비해 인종주의나 여성비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은 줄어들었지만, 이번 속편 역시 한국과 다른 아시아를 ‘후진국’으로 묘사하는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악을 없애기 위해선 초법적 폭력도 무방?

정당성 묻기보다 개인의 도덕 문제로 치환

민족국가에 대한 위험한 열망 어른거려


이 영화는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제시하지 않는다. 악인은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존재로 그려진다. 그렇기에 마석도가 절대적 악인을 처리하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평면적인 캐릭터에 근거한 선과 악의 대결은 이미 예견하고 있는 아마겟돈처럼 필연적인 결말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손석구가 연기한 강해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 영화는 관심이 없다. 초법적인 폭력으로 법의 맹점 때문에 해결하지 못하는 악을 소탕한다는 설정은 ‘공공의 적’이나 ‘베테랑’ 같은 전작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영화들이 대체로 사법 제도의 결함을 비웃는 상류층의 악덕에 대한 도덕적 징벌을 보여 주는 것과 달리, ‘범죄도시2’의 악인들은 구제불능의 하류층으로 그려진다. 복잡한 현실의 단순화에 대해 혹여 발생할 수도 있을 관객들의 불만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이 영화는 “이유가 어딨어?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라는 대사로 계급에 대한 관심 자체를 일축해 버린다.

이 영화의 서사에서 ‘나쁜 놈’이란 불법 자체를 저지르는 놈이 아니라 도덕률을 지키지 않는 놈이다. 이미 마석도나 강해상이나 불법을 넘어서서 초법적인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이들에게 법이란 것은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이다. 걸림돌은 피해 가면 그만이다. 이 영화의 흥행을 가능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은 바로 이런 심각한 법에 대한 질문을 ‘무지한 공권력’이라는 설정으로 능숙하게 피해 가는 가벼움에 있다. 마석도는 그 반대편에 있는 깡패들 못지않게 순수하게 무지하다. 그러나 이 무지한 공권력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사법 제도와 무관하다.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권력, 한국의 액션 영화는 대부분 이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가 갈리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아무리 블록버스터라고 할지라도 할리우드 영화는 법 바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배트맨’이나 ‘조커’를 보더라도 그렇고, ‘슈퍼맨’ 역시 그렇다. 언제나 이들 슈퍼히어로물은 초법성이라는 캐릭터의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심한다. 불법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한 초법적 폭력의 정당성을 묻는 것이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의 액션 영화들은 초법적 폭력에 대한 질문을 대부분 도덕적인 문제로 치환한다. 나쁜 놈이 있는데 그 나쁜 놈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양심적 개인이 승리하면 문제없는 것이다.

‘범죄도시2’는 이런 불편한 생각 자체를 한국보다 더 후진국인 동남아시아를 상기시키면서 차단한다. 중국 혐오 또한 배경으로 처리했을 뿐 여전하다.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선진 경찰은 타국에 가서 법을 어겨도 상관없다. 심지어 국제법마저 뛰어넘는 초법적인 공권력, 말하자면 절대적 민족국가에 대한 열망이 한국 관객을 사로잡는다. 개인주의와 국가주의가 교묘하게 결합해 있는 이 상태가 바로 지금 한국이 도달해 있는 문화정치의 임계점이다. 이런 분석이 웃자고 만든 영화에 너무 죽자고 달려드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관객을 즐겁게 만들고 있는 이 서사가 정치적 판본으로 바뀌었을 때, 상황은 이 영화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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