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에 한 방송사에서 ‘만 원의 행복’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출연한 연예인들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그것만으로 일주일을 버티게 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물건이나 음식을 받아서도 안 되고, 전화 통화료까지 만 원 내에서 처리해야 했다. 아무리 20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다수 출연진은 기꺼이 버텨 냈고,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소소한 재미를 느끼면서 동시에 단돈 만 원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그 프로그램은 인기가 좋아 5년 가까이 장수했다.
이후 ‘만 원의 행복’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바람을 일으켰다. 만 원에 맞춘 메뉴를 선보이는 술집이나 음식점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만 원의 행복’을 내세운 이벤트를 기획하는 공연단체도 줄을 이었다. 최근 어떤 은행은 최저 불입액을 만 원으로 낮춘 적립식 펀드 상품을 내놓기도 했고, 한 지자체는 저소득 주민들에게 ‘만 원의 행복 보험’을 무료로 가입시켜 주기도 했다. 지난 6·1 지방선거 때 교육감 후보로 나선 어떤 이는 ‘만 원의 행복 후원 모금’ 캠페인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말에는 붕어빵을 팔면서 매일 만 원을 모아 해마다 365만 원을, 그것도 무려 10년을 한결같이 기부해 온 ‘붕어빵 아저씨’가 한 방송 매체를 통해 소개돼 잔잔한 감동을 줬다. ‘붕어빵 아저씨’는 만 원으로 행복을 얻는 또 다른 길을 보여 줬다.
그렇게 ‘만 원’은 우리 곁에서 행복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왔다. 행복이란 값비싼 것을 얻고 풍요를 누릴 때만 얻어지는 게 아님을, 오히려 작고 값싼 것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나아가 이를 다른 이와 나눌 때 찾아오는 것임을 ‘만 원의 행복’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만 원의 행복도 이젠 옛말”이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식위민천(食爲民天)이라고, 서민들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 법인데, 그 먹는 것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서민들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주머니 가벼운 주당을 위해 모든 안주를 만 원에 내놓았던 부산 부전시장의 한 실내포장마차 주인이 최근 식재료비 폭등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안줏값을 올렸다는 소식이다. 주인의 잘못도 손님의 잘못도 아닌데 만 원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크기는 갈수록 쪼그라든다. 누구를 탓해야 하나. 서글플 따름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