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곧 최고의 관광도시가 될 듯하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 관광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 같다. 곧 새로 취임할 부산지역 기초단체장 당선인들의 말을 모아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소리다. 당선인들이 내놓는 지역발전 구상은 대부분 관광과 연결된다. 그들의 비전 제시엔 ‘머물고 싶은 곳’ ‘체류형 휴양지’ ‘관광 벨트 조성’ ‘관광 인프라 확충’ 등의 표현이 공통적으로 동원된다. 물론 바다 경관이 일품인 부산은 관광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부산의 모든 곳이 관광과 밀접하다. 그렇다고 부산지역 구·군들이 하나같이 특별한 관광지가 되기 위해 애쓰겠다는 일률적 모습이 썩 참신해 보이지는 않는다. 엇비슷하게 획일화된 비전이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새롭게 취임하는 단체장들이 보다 다채로운 빛깔과 목소리를 낸다면 반가울 텐데. 아쉽다.
그렇다고 그들이 한없이 몰개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눈길 붙잡는 아이디어도 군데군데 있다. 이갑준 예비 사하구청장은 다대포~가덕도 해상교량 건설에 도전한다. 가덕신공항의 경제 파급효과를 사하구로 잇기 위한 인프라 구상이다. 주석수 연제구청장 당선인은 젊은 인구 유입 흐름에 맞춰 양육비와 산후조리원비 지원 혜택을 약속한다. 김형찬 강서구청장 당선인은 ‘다람쥐버스’를 제안한다. 대중교통이 미비한 지역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구청이 공공버스를 운행한다는 구상이다. 조병길 예비 사상구청장은 개발사업 경관심의 등을 강화해 ‘회색빛 사상공단’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영욱 부산진구청장 당선인은 부산진구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계획된 일정보다 더 서둘러 뜯어내겠다고 벼른다. 동서고가로와 부암고가로 철거는 부산진구 최대 현안이다. 정종복 기장군수 당선인은 ‘욕구 조사’를 하겠단다. 군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정책을 찾아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김성수 해운대구청장 당선인은 소외계층의 불편·불만·불안 ‘3불’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한다.
새 기초단체장들 관심사 엇비슷
‘관광벨트 조성’ 등 판박이 구상
획일화된 비전 감동 못 줘
미래지향적 비전 요구 거센데
압도적 선거 결과에 자만은 금물
새로운 아이디어 경쟁 기대
재선에 성공한 박형준 부산시장도 시민에게 앞으로 어떤 감동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 박 시장은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폭넓은 움직임으로 존재감을 높였다. 그는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을 2030월드엑스포 홍보대사로 전격 섭외한 데 이어 엑스포 유치 기원 BTS 부산 글로벌 콘서트 개최 방안도 제시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2차 경쟁국 프레젠테이션에서 박 시장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호흡을 맞추며 유치전 분위기를 이끌었다. 사실 BTS라는 초대형 글로벌 스타가 부산을 위해 뛰기로 약속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다. 이 같은 노력이 2030월드엑스포 유치라는 결실로 이어진다면 박 시장은 어마어마한 공적을 자랑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박 시장 입장에서 이 성과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온전히 박 시장에게 비롯된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점이 한계로 지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30월드엑스포 유치 프로젝트는 불명예 퇴진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시절 출발했다.
지난해 4·7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시장. 1년 임기 시장으로서 다시 지방선거에 나서야 했던 만큼 깊이 있는 구상을 내보일 틈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제 그는 연임으로 여유를 찾았다. 많은 시민은 쉽게 체감할 수 있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을 기대한다. 끝없이 추락하는 대한민국 제2도시를 침체의 늪에서 건져 올릴 비전에 시민들은 목말라 있다. 그의 대표 공약 ‘15분 도시’와 2030월드엑스포 유치 등의 기시감 있는 어젠다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박 시장이 떠안아야 할 몫이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부산지역 단체장 당선인들 대부분 높은 지지율을 거뒀다. 보수 정당 일색의 과거회귀형 지방선거 결과는 양날의 칼과 같다. 선거 때까지만 해도 모든 후보자들은 ‘제발 이길 수만 있다면’ 하는 불안감을 품는다. 그러나 제법 큰 차이로 승부가 갈리면 승자는 자연스럽게 당선을 ‘당연했던 일’로 여기게 된다. 쉬운 승부에다 일당 독점이라는 압도적 정치지형은 자만을 부르기 쉽다. 오만은 자멸을 부르기 일쑤다. 언제 어디서나 늘 봐온 공식이다.
부산지역 단체장들이 강렬한 선거 결과에 취해 다들 비슷한 구호만 외쳐대면 사람들은 금세 알아챈다. 관광산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부산시장과 구청장·군수가 앵무새처럼 관광 타령만 해댄다면 미천한 바닥이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승자는 내일의 물갈이 대상으로 언제든 처지가 뒤바뀔 수 있다. 군림하려 들면 추락한다. 살아 움직이는 아이디어로 지역과 시민을 위해 땀 흘린다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곧 새 임기를 시작하는 단체장들의 진심 어린 경쟁을 기대한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