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6·25 선원의 날

입력 : 2022-06-27 18: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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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과 외항상선 선원. 이들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여 한국 경제 성장의 초석을 놓았다. 돈을 벌기 위해 연중 절반 이상을 가족과 떨어진 채 목숨을 걸고 거친 바다와 싸워야 했다. 선원들은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맨주먹으로 일어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주역이었던 셈이다.

선원들의 오랜 외화 획득은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되는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전쟁 파병 장병들보다 역할이 훨씬 컸다. 1964~75년 파독 근로자의 외화 송금액은 1억 128만 달러다. 비슷한 시기인 1967~78년 해외 송출 외항 선원의 송금 외화만 4억 3900만 달러로 파독 근로자의 4배가 넘는다. 해외 송출 선원이 1970~80년대 초 벌이들인 외화는 국내총생산(GDP)의 0.2~0.3%를 차지할 정도였다.

당시 ‘마도로스’로 불리는 선장과 1등 항해사 등 고급 선원은 하급 공무원 월급의 10배 가까운 큰돈을 벌었다. “1년만 배를 타면 집 한 채를 산다”는 말도 유행했다. 선원들의 희생과 노고로 한국은 무역대국과 해양강국도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 엄청난 공로가 파독 근로자나 베트남 참전 용사의 널리 알려진 활약상에 가려져 있다는 게 해양수산업계의 불만이다.

선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국내와 달리 2010년 국제해사기구(IMO)는 6월 25일을 ‘선원의 날’로 지정해 매년 세계 선원들의 공헌을 기린다. 글로벌 경제와 인류의 풍요에 이바지하느라 힘들고 고독한 선상생활을 하는 선원의 중요성을 알리고 사기를 진작하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날은 한국 선원들에게 유명무실하다. 공교롭게도 엄숙해야 할 6·25전쟁 기념일과 겹쳐 선원들의 축제일로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선원들은 북한 미사일 도발로 국민의 안보의식이 높아진 올해 선원의 날엔 더욱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정부가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7년 전부터 전국해상선원노련이 주도해 선원을 위한 별도의 법정기념일 제정을 추진했으나, 국회의 무관심과 여야 정쟁에 밀려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부산 서·동구)이 선원의 긍지를 높이기 위해 6월 셋째 주 금요일을 새로운 선원의 날로 정하자는 선원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 법안이 이번 21대 국회에서 통과돼 숨은 산업역군인 선원들과 가족에게 자부심을 심어 줄 수 있는 잔칫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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