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의 지발도네(Zibaldone)] 생활용품 매장과 팝 아티스트

입력 : 2022-07-21 18: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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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팝 아티스트 강영민 작가의 오픈 스튜디오를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강 작가는 작년부터 거의 일 년 넘게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금성여인숙에 작업실을 열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대개 팝 아티스트라고 하면, 대도시의 번화가와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웬일인지 그는 지방으로 내려가서 ‘아트’를 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은 단순한 개인 공간이 아니라 오픈 스튜디오라는 명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관심 있는 누구든 방문해서 작가의 작업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열린 장소이다.

그가 머물고 있는 금성여인숙은 1964년에 처음 영업을 시작해서 지역 신문이 ‘노포’라고 소개할 정도로 그 일대에서도 오래된 숙박업소인데, 강 작가가 거주하면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공연장 역할까지 하고 있다. 강 작가의 ‘꼬부랑 게하’와 극단 미인의 ‘금성여인숙’이라는 동명의 퍼포먼스가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작업이 외지인의 ‘장기 투숙’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작가’라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습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게 해 줄 뜻밖의 실마리를 1년 만에 인제로 향하는 이번 여정에서 발견했다.


지방소멸은 인구감소 때문 아니라

아무도 지방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

급선무는 지방을 새로 발견하는 일


생각보다 일찍 터미널에 도착한 까닭에 나는 어슬렁거리면서 낡은 건물 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 KTX도 없던 학창 시절 서울에 올 일이 있으면 자주 이용했던 터미널이었다. 급한 끼니를 해결하던 지하 식당가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인지 모두 철수하고 텅 빈 채였다. 그 을씨년스러운 공간 한 칸을 화려한 불빛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생활용품 할인 매장이었다. 거의 모든 공산품을 망라하고 있는 진열대의 다양성은 놀라웠다. 인스턴트 라면부터 가전제품과 학용품은 물론이고, 레저와 캠핑용품까지 흡사 백화점을 축소한 것 같은 광경이었다. 물론 같은 생활용품 매장이 서울 중심가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터미널에 있는 매장은 훨씬 더 다채로운 상품을 갖추고 있었다.

말하자면, 터미널의 생활용품 매장은 서울에 잠시 들렀다가 돌아가는 지역 주민이나, 휴양지로 휴가를 떠나는 이들에게 필요할 만한 물품을 거의 망라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서울과 지방이 만나는 그 애매한 접점의 공간이 터미널이라고 한다면, 그 터미널 지하에 위치한 거대한 생활용품 매장은 그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교류의 현재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공간을 ‘비장소’(non-place)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결국 장소라는 것이 어떤 고정점을 말해 준다면, 터미널 같은 이동의 공간은 장소의 성격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도시의 삶이라는 유동의 양태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비장소이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구조가 만들어 낸 경험의 적층이 낡은 터미널이라면, 그 아래에 숨어 있는 화려한 생활용품 매장은 그 구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중간지대일 것이다. 서울 사람이 쓰는 제품을 지방 사람도 쓴다는 ‘진실’을 이 생활용품 매장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서울 사람이나 지방 사람이나 욕망은 동일하다. 욕망은 충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 욕망 자체를 지속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품은 그 욕망을 지속시키는 유혹이자 핑계이다. 서울과 지방을 구분하는 체제의 논리를 넘어서 이 욕망은 작동한다. 우리는 손쉽게 서울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 정상성에 견주어 감산하는 방식으로 지방을 인식한다. 숱한 지방자치단체가 내건 ‘지역 활성화 방안’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렇게 지방이 서울에서 무엇인가 감산한 결과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전제한다.

이런 까닭에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이를 개탄하는 발언들이 공감을 얻고, 이런 현실에 무대책인 ‘중앙정부’의 임무 방기를 힐난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런 지방소멸이라는 발상 자체가 서울의 정상성을 절대화한 안이한 인식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지방에 이주 노동자들이 거주함으로써 인구집단의 다양성이 증가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목소리가 대변하는 지방소멸은 한국인이 거주하기 불편해진 그 지방의 현실을 암시하는 것에 가깝다. 정작 지방이 소멸하는 까닭은 인구 감소 때문이라기보다 우리가 더 이상 지방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급선무는 지방을 새롭게 발명하는 일이다.

강영민 작가의 인제 프로젝트는 서울이라는 정상성의 규범에 도전하고 그 감산의 공리를 해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정상성의 해체는 공간의 고립화가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침대 하나만 달랑 놓인 소박한 그의 오픈 스튜디오는 새로운 감각의 나눔을 통해 지방의 욕망을 발명하려는, 21세기 균질화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한 팝 아티스트의 방주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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